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상 그 어떤 전란보다도 피해가 막심했던 최악의 전쟁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중 5년을 재상으로 지낸 분이 바로 서애 유성룡입니다. 이 분은 훌륭한 재상인 동시에 탁월한 군사 행정가였습니다. 사실 이 분이 발탁한 인물들이 임진왜란을 그나마 막아내고 이겨낸 장본인들입니다. 권율 장군, 이순신 장군 같은 불멸의 용사들을 유성룡이 발굴하여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유성룡의 참된 위대함은 전쟁 때보다 전쟁 이후에 더욱 빛났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를 살펴보니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전란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졌고, 백성들의 삶의 터전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깊이 성찰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왜 이런 전란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왜 이를 막지 못했는지, 전쟁 중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이런 참화를 막으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펴낸 책이 바로 징비록입니다.
그는 징비록 서문에서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환란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지은 까닭이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려운 시기에 중대한 임무를 맡아 나라가 위태롭고 쓰러지는 형편인데도 제대로 일으켜 세우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겸손하게 기록했지만, 사실 유성룡이라는 분이 계셨기 때문에 그나마 임진왜란이 그 정도 피해를 보고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사실은 이 분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기록한 징비록이 그의 사후에 조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잘못한 것을 돌이키고 들추어 내고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을 직면해야 되고 직시해야 되고 다시 돌이켜야만 했지만, 백성들도 위정자들도 아무도 징비록을 들추어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타난 것은 1712년입니다. 조선의 사신들이 일본 오사카의 거대한 상업지구에 갔는데, 그곳에 큰 책방이 있었습니다. 책방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책이 있어서 사신들이 책을 구입하려고 줄을 섰습니다. 구입하고 보니 조선 징비록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책이 1712년 일본 오사카에서 성황리에 팔리고 있었느냐 하면, 1695년 일본 교토에서 조선 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입니다.1695년 당시 출판될 때 열여섯 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세상에 나왔습니다.
조선에서 사라진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그토록 팔릴 수 있었겠습니까.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의 패배를 뼈아프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총칼을 갖추고 7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도 조선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왜 그랬는가, 다시 조선 정벌에 나선다면 그때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재상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반성한 것을 입수해서, 다음에 침략할 때는 꼭 이기리라 다짐하면서 책을 읽어 갔습니다.
이것은 비단 일본뿐이 아닙니다. 1880년에 중국의 학자 양수경은 조선 징비록을 중국에서 출판했습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입니다. 어떻게 일본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조선을 정복하지 못했을까, 조선은 어떻게 전쟁 이후에 그 다음 대비책을 세웠을까, 제3자인 중국의 입장에서 징비록을 분석하고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인 당사자 우리는 징비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임진왜란 이후 400여 년이 지나 우리는 다시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했습니다. 수치와 수모를 겪었고, 수많은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직하게 돌아보면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준엄한 교훈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돌이키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서 또다시 나라를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돌이켜 고쳤더라면 그런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때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400년 후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에 치우쳐 있을 뿐입니다. 조목조목 따져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강했는지, 우리는 왜 나라를 잃어야 했는지, 지금은 어떠한지 정직하고 냉철하게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정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와 정치의 영역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류가 실패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실패했기에 하나님은 홍수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에게 세상을 재창조하시면서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 삶을 정직하게 관조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고쳐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배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하는 노아와 그 가족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세 가지 핵심 단어가 등장합니다. 생육, 번성, 충만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말씀이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자주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첫 사람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똑같지 않습니까? 생육, 번성, 땅에 충만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을 노아에게 그대로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담과 그 후손들이 이 명령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첫 인류가 실패했으므로 하나님은 그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시작하시면서,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이 명령을 반드시 이루어 내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그 후손들은 이 명령을 어떻게 실천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생육, 번성,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오직 육체적으로만, 생물학적으로만 이해했습니다. 아담의 후손, 특히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결혼 제도를 파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가정을 이루라고 하셨는데, 그는 아내를 둘이나 두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라멕은 잘 실행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악한 자가 라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셋, 에노스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예배 공동체를 뛰쳐나갔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생육과 번성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지만, 영적으로는 생육하지 못했고, 영적으로는 번성하지 못했고, 영적으로는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노아 시대 그 악했던 시절을 예수님은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을 보십시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 심판이 임하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창세기 1장 28절과 9장 1절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만 번성하고, 육체적으로만 생육할 뿐, 영적인 것은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