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원 김도해

링크 복사 및 이동, 본문 복사와 캡처를 금합니다.
https://youtu.be/lDC6hc0CO9I?si=mPP2eWYB3fMogEkp
삶에 있어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도해는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때가 온다면 도해는 가장 처음의 시작을 지워 버릴 것이라고. 도해에게 처음. 김도해에게 있어 지우고 싶은 처음은 언제일까. 지금으로부터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유치원생일 때에. 어린 도해에게 있어 좁은 인간관계의 시작. 동갑내기 여자아이의 한리인. 조용하고 내성적인 도해와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제법 사고뭉치였던 여자아이. 그럼에도 도해를 좋아해 매사 따라다녔었던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던 친구. 성향이 정반대임에도 서로가 유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끼리 이어진 친분 탓이었다. 소꿉친구. 유치원에서 리인이 누군가에게 장난을 치는 날에는 어린 도해가 매번 리인을 말렸다. 때때로 리인의 장난 대상은 한정돼 있었는데, 그건 도해 그리고 리인보다 한 살 더 어린 남자아이였다. 작으면서도 어린 나이임에도 묵묵하던 성향. 유치원이라는 넓고도 작은 공간 안에서 공존하던 전부. 사실은 소꿉친구의 범위에는 그 애도 있었기에.
나 저 누나 싫어. 크게 부정하는 법 없던 그 애가 처음으로 리인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엄마들끼리 모인 탓에, 그 애의 집에서 놀던 세 아이가 눈을 깜박이며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리인은 그 애의 말 하나에 팩!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곧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 애의 엄마가 그 애를 달래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인 누나가 속상할 텐데? 정작 리인의 엄마는 크게 웃었다. 우리 리인이가 맨날 괴롭히는데 나 같아도 그렇지.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을 만지던 그 애를 보던 도해만이 마음이 타들어 갈 뿐이었다. 싸우면 안 되는데.... 도해는 그날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알려 준 네잎클로버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혼자 놀이를 하던 그 애에게 다가간 도해가 어깨를 쿡 눌렀다. 있잖아.... 도해를 바라보던 시선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이 그랬어.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주는 거래. 그런데 리인이가 나한테 네잎클로버를 받고 싶다고 했어. 행복해질 거래. 행운이 올 거라구....
그 말을 들은 그 애는 어색해하는 도해를 바라보다가 장난감을 정리했다. 자신 몫의 작은 신발을 신은 채로 밖으로 나서던 그 애의 뒷모습을 보던 도해는 여전히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저층이었으니, 남몰래 베란다 유리 너머로 그 애를 바라볼 때에 아파트 화단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괜히 말해 줬을까? 감기에 걸리면 어떡하지? 우리 도해 뭐 하고 있어? 그 애의 엄마가 도해를 불렀다. 아, 그게.... 도해의 시선을 따르던 그 애의 엄마가 웃었다. 어머.
조금 더 먼 시선 사이,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 그곳의 그네에 앉아 애먼 발을 굴리던 리인에게로 다가간 채로.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건네던 건 그 애가 집요히 찾은 네잎클로버였다. 단순한 리인은 그 애와 친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 애가 내민 네잎클로버에 훌쩍이던 리인이 웃었다.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은 그 애가 아주 작은 시간을 살며 바라본 것들 중 가장 밝은 것이었다고. 내 거야?! 곧장 일어나 그 애를 꽉 안은 작은 여자아이. 작은 남자아이는 그 여자아이에게 안긴 채, 작은 귀를 붉혔었다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베란다 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린 도해였다. 화해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도해는 이유 모를 울렁임을 경험했다.
바보처럼 시작을 하게 했다.
나이가 조금 더 먹어 각자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리인은 엄마에게 혼나는 날이면 습관처럼 그네에서 울적함을 표현했다. 태권도 학원이 끝나 도복을 입은 차림의 그 애는 어색히 지나가려다가도, 그 애의 기척을 경험한 리인은 매번 그 애를 불렀다. 왜 그냥 지나가? 무슨 일 있는지 물어봐. 그 애는 눈을 깜박이다가 리인의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원래 잘못했으면 사과하라고 했어요. 그 말에 여린 리인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눈물을 쏟으려고 할 때였다. 손 뻗어 어린 리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는 건 그 애였다. 서투르지만 그 애의 위로 방식이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 리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도해는 리인이 혼자 놀이터에 나갔는지 궁금해 베란다 유리 너머로 다시금 바라봤다. 어린 도해가 보게 된 건 도복을 입은 그 애와 그 애의 손길이 닿는 리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커튼 뒤로 숨었다. 그 애는 그때 리인의 머리에서 손을 떼려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을 쥐는 리인에 의해서. 눈물을 그친 채로 웃던 얼굴. 언제인가 자신이 봤었던 그 얼굴을. 네가 나한테 네잎클로버 준 이후부터 행운이 생기나 봐. 그냥 그런 것 같아! 그네를 쥔 채 환하게 웃던 얼굴은 어린 그 애를 겨냥했다. 그 애는 그 순간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았으니, 담담하고 묵묵한 성정은 무엇이든 오래 지속될 것이었다. 커튼 뒤에 숨은 도해는 이유 모르게 떨리는 심장 부근을 꼭 쥔 채로 떠올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도해는 늘 한 걸음 늦었다.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 비밀 장소야. 특별한 곳인 거야. 약속이야.
해마다 리인이 힘든 날에는 그 애가 언제나처럼 비어 있는 그네에 앉아 리인을 위로했다. 언제까지 울 거예요. 몰라, 그냥 있어 줘.... 세 사람의 관계에서 그 비밀에 낄 수 없었던 건 도해뿐이었다. 도해는 늘 한 걸음 늦었기에. 그 애의 위로 끝에는 늘 리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 애를 올려다봤다. 그 애는 그럴 때에면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그때가 어느새 중학생이었고, 어느새 고등학생이었다. 리인은 그 애와 모든 것이 정반대였고, 그 애를 거슬리게 했다. 도해는 그 애와 때때로 비슷했고, 묘하게 어색해하는 건 도해였다. 그 애와 도해의 공통점은 리인을 챙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