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워크룸프레스 박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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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활성

안그라픽스 편집자, 격월간 디자인 잡지 〈디자인 디비〉와 〈디플러스〉 편집장, 민음사 출판그룹 세미콜론 편집팀장을 거쳐 현재 워크룸프레스 공동 대표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 취향이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누군가의 취향을 쫓기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 판단을 믿는다.”

그래픽 스튜디오 ‘워크룸’이 만든 출판사 ‘워크룸프레스’가 어느덧 120여 종의 출판물을 보유한 출판사로 성장했다. 워크룸과 워크룸프레스의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올해로 워크룸/워크룸프레스가 15주년을 맞았다. 2006년 동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며 다소 무턱대고, 별다른 계획 없이 스튜디오를 연 것치고는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이름을 짓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던 때가 기억난다. 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준은 이름을 듣더니 화들짝 놀라며 스튜디오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냐고 반문했다. 이름이 별로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 스튜디오 이름이 먹구름이 뭐예요.” 다행히 그 후로 워크룸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름 탓에 주야장천 일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그 시간 동안 관계-연결-네트워크로 상징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시각 문화, 타이포그래피, 출판, 인문학 등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편집자로서 어떤 변화의 흐름이 가장 눈에 띄었나?

미술가 세스 프라이스는 자전 소설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에서 흥미로운 논지를 편다.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역사는 개인적 단말기에서 시작해 네트워크로 대중화 시대를 맞고, 다시 스마트폰을 통해 극렬한 개인주의로 회귀하는 모델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로 귀결되는 영화의 역사에 대입해 봐도 얼추 말이 된다. 네트워크를 “지구를 둘러싸는 말도 안 되는 길이의 수만 개 채찍 가닥들이 후려치고, 갈기며, 찢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채찍의] 손잡이는 누가 쥐고 있었나?” 시대 변화의 흐름은 너무 큰 질문이라 뭐라 답하기 어렵지만 점점 편재하는 스크린 뒤에 뭐가 있는지는 한번쯤 돌아봐도 좋겠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워크룸프레스는 변화의 흐름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중동’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독자/사용자의 변화하는 ‘취향’을 바라보는 워크룸프레스 혹은 편집자 박활성의 입장과 태도가 궁금하다.

우리는 사람들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 취향이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누군가의 취향을 쫓기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 판단을 믿는다. 예컨대 종종 독자로부터 워크룸프레스에서 펴내는 책의 가독성이 나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나는 워크룸 디자이너들의 판단을 믿는다. 그것이 더 가독성이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전문성과 지식을 갖춘 디자이너가 고민 끝에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