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사 (창8:1-12)

윌리엄 어터몰레는 영국의 화가였습니다. 그는 62세가 되던 해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술 교사였던 아내의 도움으로 그는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발병 전에 그린 첫 번째 자화상은 정교하고 섬세했습니다. 그러나 발병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그린 자화상들을 순서대로 보면, 병이 점점 깊어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마지막 자화상은 그가 얼마나 심한 병에 걸려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훌륭한 화가였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사후에 알츠하이머 연구에 더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 질환입니다. 요즘은 치매라는 명칭 대신 인지저하증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치매라는 한자어가 어리석은 미치광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당사자와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중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에 대해 자신이 없어집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이름도 정확히 알았고, 경험한 사실도 객관적으로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이름도 떠오르지 않고, 사건도 흐릿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슬퍼집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기억이 깜빡깜빡하는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약한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한계적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난 이후, 그 이전에 지었던 죄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나님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에 타고 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억이 되는지, 하나님의 기억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구원받은 자의 불안

1-1. 방주 안의 노아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에 탄 것은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었습니다. 방주에 탄 이후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는 자그마치 40일 밤낮을 내렸습니다. 방주에 탄 직후 그들은 당분간 안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만약 방주 밖에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과 자연이 다 쓸려가는 가운데 자신들도 떠내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의 위엄과 두려움도 함께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방주 안에 머문 것은 40일만이 아니었습니다. 40일간 비가 내린 기간을 포함해서 그들은 무려 5개월 동안 물이 줄어들지 않아 방주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40일이 안도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기간이었다면, 그 이후 110여 일 동안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방주에서 지냈을까요?

동력도 없고 돛도 없는 방주가 물 위를 떠다니다가 큰 바위에 부딪히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아닐까? 이 배가 어디에 멈출까?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 버렸는데, 방주에서 나간다 한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걱정과 두려움이 노아와 가족들에게 왜 없었겠습니까? 그들은 아마 걱정도 되고 염려도 무척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원받은 백성도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방주에 탄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은 백성이 아닙니까? 방주에 탄 것 자체가 특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개방하시고 누구나 타라고 말씀하셨지만, 노아의 가족들이 노아와 함께 방주에 탄 것은 특권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었지만 노아의 가족들이 의인이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어 생명을 건짐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방주 안에서 걱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이나 하실까? 우리가 이 방주에 있다가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루하루 지나갈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1-2. 광야의 이스라엘

성경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여전히 두려워했습니다.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대를 이어 종살이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건지기로 작정하시고 모세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10가지 재앙이 임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홍해가 놓여 있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따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바닷길이 질퍽질퍽했지만, 하나님께서 동풍을 보내어 바다를 마른 땅같이 말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안전하게 건넜습니다. 그들이 다 건넌 후에 뒤쫓아오던 이집트 군대는 수장되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구원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들은 광야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염려가 됩니다. 과연 걸어서 무사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수 있을까?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통해 인도해 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걱정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는 자격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업도 주시고 일터도 주셨습니다. 가정도 꾸리게 해주셨습니다. 사방팔방 어려움으로 옭죄임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내주셨습니다. 인생의 험산준령을 건너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오늘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받은 이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두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의 노아와 가족들처럼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겁이 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잊어버리셨을까요? 우리도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이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 응답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혹시 나를 기억조차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2.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