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시대 - 풀린 돈이 몰고 올 부의 재편 2017년 8월 김동환,김일구,김한진 448쪽 152*223mm (A5신) 778g ISBN : 9791130613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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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5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미국에 있었는데요, 미국에서 살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라든지 도시와 농촌 간에 큰 격차가 있습니다만, 미국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 외곽지역의 가난한 지역을 가보면 이게 정말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정말 피폐한 지 역이 많습니다. 이들 지역에는 흑인과 히스패닉계뿐 아니라 저소득 블루칼라 백인들도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꿈이 없어요. 교육 시스템은 무너졌고, 공공병원은 낙후됐고, 교량은 통행료를 지불하고 건너면서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노후되어 있습니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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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말씀하셨듯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가 내수 부양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지구촌 모두가 국경의 문을 닫고 인위적으로 자국 일자리 늘리는 데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 정부도 내수부양책을 계속 펼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한계가 있는 일입니다. 설비투자율이 떨어진 것은 세계교역이 위축되기 시작한 2011 년경과 일치합니다. 중국인들의 임금이 오르고, 그에 따라 생산비용이 올라가고, 투자 동인이 줄고, 기존 설비의 가동률마저 떨어지기 시작했죠. 그리니 이제는 투자율을 떨어뜨린 요인인 임금 상승과 도시화 현상이 소비로 이어져 GDP 대비 소비 비율이 올라가야 할 시점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중국 경제는 거대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거시적인 변화에는 시간이 좀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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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도 반도체 호황으로 비슷한 착시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2017년 상장기업 전체 영업이익은 200조 원(650 개 기업 기준)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이 중 약 27%인 53조 원을 삼성전자 한 기업이 낼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이나 가계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산업들이 중국 경제나 중간재 수요 둔화 등 구조적인 이유 로 성장탄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호황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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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반도체를 말씀하셨는데, 반도체는 최근 호황이죠. 컴퓨터, 자동차 전장화부터 사물인터넷, 각종 모바일 기기가 반도체를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몇몇 대기업에 국한된 일입니다. 물론 반도체 장비나 기자재 업체에 낙수효과가 있긴 하지만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제한적이죠. 이런 현상은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국가 간 낙수효과와 산업 간 분업이나 상호 선순환의 고리가 약해진 듯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수출해야 하는 산업 가운데 상대 교역국이 반드시 수입을 원하는 산업의 수효가 줄고 있어요. 신흥국 경제 발전이 과거처럼 한국의 모든 범용 수출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세상도 아니고요. 미국과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교역재의 교역 증대를 가져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대한 자기네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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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가격의 양극화

김동환 가끔 저한테 부동산에 대한 문의를 해오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럴 때 아주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충분한 자산이 있으면 강남 등 이른바 프라임 지역에 집을 사시고, 그 정도 돈이 없으면 그냥 평생 살 집을 구하시라고요. 사실 고가권 아파트라고 하면 서울시의 강남이나 서초, 그리고 용산 일부 지역 등에 있는 아파트를 얘기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울과 인근 지역의 최고가 아파트 와 최저가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열 배가 됐습니다. 압구정동이나 반포의 30평대는 20억 원에 육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10분의 1 가격이면 비슷한 아파트를 찾아볼 수 있잖아요. 이건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죠. 또 30년 전에는 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었고요. 그럼 왜 이렇게 아파트 가격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갭이 메워질 것인가, 아니면 더 벌어질 것인가? 저는 장기적으로 보면 캡 이 더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집값은 어디나 엇비슷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를 보면 한 블록 차이에 따라 집값이 크게 다른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같은 동네인 건가 싶을 정도로 신호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에요. 맨해튼의 그 많은 아파트와 콘도미니엄들이 9·11 사태와 금융위기 때 가격이 속절없이 내려갈 것 같아도 다시 오른단 말이죠. 맨해튼만 하더라도 세계의 모든 부자가 이곳에 집을 갖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올라갑니다. 서울 중에서도 살고 싶은 동네라고 하는 지역의 아파트들 역시, 김 센터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서울시는 아파트 공급을 틀어막는 정책을 시종일관 펼치고 있잖아요? 이런 규제로 인해 서울 지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서울과 주변부 신도시들 간의 아파트 가격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를 용인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지역간 격차는 더 벌어질 거예요. 또 하나는 몇 년 전만 해도 ‘지금 집을 사라고 하면 친구도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논객들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었죠. 부동산 필패론이 한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때와는 거꾸로 요즘은 ‘당시 집을 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친구도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잖아요. 그럼 집값이 왜 이렇게 오르느냐? 기본적으로 저금리 때문입니다. 만약 2016년에 집을 샀다면 2%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유혹이거든요. 예를 들어 1억을 대출받아 집을 살 경우 한 달에 20만 원만 내면 된다는 얘긴데, 이것은 월급 생활자들에게 굉장한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저금리 구조가 순간적으로 훼손되어서 예전처럼 6~8% 정도까지 오르지 않고 제도권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3~4% 정도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한다면 괜찮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지방과 수도권의 노후 주택과 아파트들입니다. 바로 빈집의 위험인데요. 현재 일본의 경우 전국적으로 빈집이 800만 채가 넘습니다.

김한진 네. 도쿄에도 빈집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김동환 그 빈집들이 많은 곳이 교통이 좋지 않은 외곽지역이라는 건데요. ‘일본 가정식’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때 가정(家庭)에서 ‘정(庭)’은 정원을 말합니다. 일본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정원이 있는 집에 살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기는 작더라도 정원 있는 집에 사는 것이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노인이 된 단카이 세대가 이제는 병원과 복지시설이 가깝고 편리한 공동주택에 살고 싶어 합니다. 800만 채가 넘는 일본의 빈집들은 단독주택과 외곽의 아파트들입니다. 단카이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대규모 빈집이 발생하는 단절효과가 나타난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처럼 단절효과가 급격하게 나타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인분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주택은 이미 노후화가 많이 진행되어 집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들은 일부가 귀농·귀촌 인구들의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수요로 충당될 것이고, 결국은 다른 목적의 토지로 전용될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지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1기 신도시 일부와 지방의 나홀로 아파트들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용적률을 크게 높여줘야 재건축의 상업성이 생깁니다. 그것도 입지에 따라 선호가 크게 엇갈리죠. 이렇게 상업성이 떨어지는 노후화된 신도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리 주택시장과 관련된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전체 시장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지역적 편차가 더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저 집 한 채 있으면 다 같지’라는 생각을 했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동산시장을 바라보는 기준

김일구 문제는 금리인 것 같습니다. 주택 공급량으로 보면 이제 총량에서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계산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준에 따르면 2014년 주택보급률은 서울이 104%이고 전국이 118%입니다. 2000년 서울 77%, 전국 96%였던 것과 비교하면 공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김한진 오피스텔 등을 포함하면 더 높아지겠죠?

김일구 그렇죠. 그런데 집을 지을 때 거기에 몇 가구가 살지 모릅니다. 구분이 잘 가지 않거든요. 오피스텔과 달리 다가구 주택은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건물에 몇가구가 들어와 있는지를 집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최근에는 전력요금계가 몇 개 있는가로 다가구주택의 가구수를 집계한다고 합니 다.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주택보급률은 이미 충분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문제는 주택 공급 총량이 아닙니다. 양질의 주택은 여전히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을 텐데, 이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지난 몇 년간 수도권 외곽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많이 지으면서, 2015~16년 2년간 약 100만 호씩 주택 공급이 늘어났습니다. 주택 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총량을 늘리는 정책은 대규모 미분양과 빈집을 양산할 위험이 큽니다. 주택 총량이 지나치게 많아져도 저금리가 지속될 때는 투기적 수요가 따라붙습니다. 금리가 낮으니 결국 부동산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투기심리가 가세하는 거죠. 그러나 금리가 올라가면 이 투기적 수요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부동산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이후에 팔려고 할 때 누가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투기적 수요자가 살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실수요자가 내 부동산을 이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