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전영중은 비시즌이었고, 성준수는 은퇴 직후로 두 사람은 운동을 시작한 열 살 이래 처음으로 아침 운동도 걸러가며 한가로이 나날을 보냈다. 바쁘게 살다 일을 손에서 놓으면 오히려 불안하다는데 전영중은 마냥 좋기만 했다. 아직 그에게는 이끌어야 할 팀과 다음 시즌이 있지만… 이제 국대로도 안 불러주는 늙은 선수는 지금의 여유를 만끽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성준수를 붙잡아 억지로 더 재우고, 늦은 브런치를 해 먹이고서 이제 막 뜨거워지기 시작한 햇살 아래서 산책한다. 일평생 실내운동만 해온 녀석의 살갗이 타지 않도록 곱게 양산을 받쳐주고 함께 그려나갈 미래를 얘기했다.

우리 이제 결혼할까? 올해는 빠듯할 거 같으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 여름 어때? 결혼사진은 스튜디오 말고 여행 다니면서 우리끼리 찍자. 아이 바로 가져도 좋을 것 같아. …근데 앞으로 뭐 할 거야? 네 성격에 쉬지는 않을 것 같고. 코치? 아니면 심판? 심판하다 답답해서 네가 공 들고 뛰는 거 아냐?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아쉬워지는 게 있다. 남자보다 여자 농구선수의 수명은 상대적으로 짧다. 성준수가 남자였다면 같은 리그에서 함께,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볍게 2세 계획을 꺼냈다 얼른 화제를 돌린 건 그래서였다. 숨 가빴던 인생에서 잠깐 쉬어갔으면 했지, 제 욕심 때문에 중단되길 바란 건 아니다. 성준수는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것을 쫓아 달릴 사람이니까. 지레 뜨끔한 속을 감추느라 아무 말이나 종알거리면 마디에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양산을 쥔 손을 감쌌다.

아이 좋지. 그럼 임신으로 쉬는 동안 네 팬이나 할까? 대답하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다 안다고. 그러니 괜찮다는 듯이. 그럴 때마다 전영중은 이 순간이, 여유로움이, 당기면 그대로 끌려오는 단단한 몸도, 뺨에 입술을 내리면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이 곁에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까지 걸어와 디저트를 즐긴다. 오늘은 여행 갈 곳을 정하고 결혼사진 찍을 때 입을 옷을 사러 갈 예정이었다. 이른 시간에 주중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금세 진동벨이 울리고, 전영중은 쟁반이 꽉 차도록 시킨 케이크와 음료 두 잔을 받아 들었다.

그때 안온한 일상이 무너졌다. 총알처럼 쏘아져 천장을 박살 내며 들이닥친 그것은 팔인지 발인지 모를 것을 휘적이며 진흙처럼 무너졌던 몸을 수습했다. 그것이 수십 개의 팔로 천장에 매달리자 충격을 받은 배관이 뿌득 소리를 내며 어긋나고, 버티지 못한 에어컨이 떨어졌다. 쿵!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었던 사람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