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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노동은 놔둔 채 일터 밖에서 스포츠센터와 영양제를 찾는다고 해서 노동자의 건강이 회복될 리 없다.”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식당과 카페, 콜센터와 도로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무사히’ 일하고 있는 걸까요? 비타민을 챙겨 먹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운동해도 건강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강은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문제고 정치의 문제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고 외쳐온 의사이자 노동건강연대 전 대표인 임준이 『오늘도 무사히』(후마니타스)를 펴냈습니다. 북토크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이었던 6월 13일의 금요일 저녁, 웃음과 고민이 가득했던 날을 글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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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노동건강연대와 인연을 맺어 온 임준 선생님이 책의 저자로 노동건강연대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임준

안녕하십니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1993년쯤에 노동건강연대 이전에 있었던 노동과건강연구회 시절부터 활동했습니다. 전공이 예방의학이라 졸업한 뒤에는 공공의료나 보건의료 관련 활동을 주로 하게 되어 2014년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활동이 줄어들었지만요.

거의 제 삶만큼의 활동 경력을 갖고 계셔요. 하실 말씀도 당연히 많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단 한 권의 책에 담으셔야 했으니 엄청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왜 책을 이제야 내신 건지 그것부터 말씀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임준

안전보건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 최근이에요. 우리 전수경 대표님께서 ‘활동을 정리할 거면 글이라도 써라’ 이런 얘기를 10년 전쯤에 했던 것 같아요. 이미 제 활동의 축이 공공의료 쪽으로 많이 가서… 원고가 마음의 빚으로만, 짐으로만 남아 있었죠. 특별히 제가 글을 쓴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그런데 제가 공중보건의사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진료행위’를 작년에 6개월간 했어요. 검진 상담을 하면서 많은 노동자를 만나니 이런저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최근의 문제의식이나 공공의료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노동자 건강권과 결합할 부분이 꽤 있겠다 싶어서 한 8개월 정도 정신없이 썼던 것 같아요. 컴퓨터 작업을 너무 많이 해서 지금 오른팔에 상당히 통증이 있어요. 주사 맞으면서 글을 썼지만, 정신건강은 굉장히 좋아졌어요. 무지 심하게 (웃음) 일을 하게 되면 다른 힘든 일이 좀 사라지게 되는 걸 경험했어요.

지난 2025년 6월 13일, 임준의 『오늘도 무사히』 온라인 북토크가 열렸다.

지난 2025년 6월 13일, 임준의 『오늘도 무사히』 온라인 북토크가 열렸다.

8개월 동안 노동자 건강권에 관한 책을 쓰면서 건강을 잃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저술 활동을 하신 거네요.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보니, 병원에 다니면서 일을 계속 나가는 노동자들이 많더라고요. 최근에 건강을 챙기는 방법이라면서 ‘저속노화’부터 무슨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한다, 무슨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죠. 『오늘도 무사히』라는 책을 쓴 저자 임준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의사로서, 건강을 개인이 관리하면 다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회적인 현상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신지요.

임준

예전에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봤는데(웃음) 요새는 무조건 반대하고 있진 않습니다. 개인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게 어떻게 보면 건강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시작일 수 있잖아요. 그러나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죠. 제가 보건 사업할 때도 느끼거든요. 보건소에서 영양 교육을 하는데, 독거노인이 많아요. 그분들에게 ‘고혈압 이런 게 있으니까 짜게 먹지 말라’ 얘기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교육이죠. 잘 생각해 보면 혼자 사시는 노인이 짜게 안 먹는 게 비정상 아닌가요? 국을 끓이면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니 계속 끓이게 되고, 결국 소금 국물을 먹는 거거든요. 그게 노인들의 일상적인 삶이잖아요.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나 문제에 개입해서 바꿀 수 있는 전략을 얘기해야죠. 영양 공급이 중요하다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마을 식당까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노인들이 혼자 식사하지 않도록 같이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거나요. 공적 개입을 통해서 뭔가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지 그냥 개인이 실천하라고 ‘싱겁게 먹어라’를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죠.

노동자 문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잖아요. 작년에 검진하면서 물어본 바에 의하면 옛날이랑 노동환경에 별 차이도 없더라고요. 좋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한 주에 50~60시간씩 일하고 집에 와서 영양제를 먹는다? 물론 영양제 먹어야겠죠. 운동도 해야겠죠. 그러나 회사의 안 좋은 환경이나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비판적 의식이 있어야 해요. 다른 한 가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사회적 현상인데,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거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건 결국 산업이랑 연결돼요. 여러 가지 식품 산업이라든지… 몸의 자본주의화와 맞물린 현상이죠. (건강을 개인 문제로만 보면) 노동 안전이나 노동 보건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는 효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몸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게끔 대상화하는 환경에 본인도 모르게 휩쓸리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