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도지사, 환경부장관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을 달리하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긴급한 현안 때문이었습니다. 1992년 이후로 서울시와 경기도의 쓰레기를 인천 서구에 있는 매립지에서 계속 매립해 왔습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인천시에서 일정 기한까지만 쓰레기 매립을 허용하고 그 이후부터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물론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기한까지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쓰레기 매립지를 계속 사용하게 해 달라고 허가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인천 시민들이 반대합니다.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각 지자체에서 나온 쓰레기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문제를 조율해야 할 부서가 환경부인데 환경부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이 모였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그저 자신들의 입장만 재확인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서울시, 인천, 경기도의 문제만이 아니고 오늘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온 인류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다음 세대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미 바다에는 폐플라스틱이 떠다니고, 그것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되고, 우리 식탁에 그대로 올라와서 우리 자녀들의, 우리 인생의 건강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인간의 탐욕이 만든 결과물에 다름 아닙니다. 요즘 들어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말이 탄소 중립이라는 말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각종 자구책들이 강구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등의 자구책이 강구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순리대로 사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고 순리를 거슬러 사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여러분, 덥고 땀 흘리는 것이 순리이고 겨울은 추운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여름에 더 시원하게 지내려고 하고 겨울은 더 따뜻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환경오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의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생활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영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순리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우리 생각과 내 의지와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역리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방주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보여줍니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방주를 물 위에 띄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곧 순리대로 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띄우신 방주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물 위를 항해하고 있는지 우리를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방주에 여덟 명이 탔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 모두가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방주의 문을 직접 닫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하나님께서 방주에 사람들이 다 탄 것을 보시고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 하나님께서 문을 닫다, 이 말씀을 원문에 의해서 직역해서 읽어 보면 '그의 등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그'는 노아입니다. 방주에 가장 늦게 탄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마지막 7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아직 닫지 않고 열어 놓으신 그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방주에 타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도 타지 않았지만 노아는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 후에 노아는 마지막에 방주에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방주에 탄 것을 보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의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라는 이 표현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그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이 아주 섬세하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아주 중요하게, 홍수 심판을 방어할 수 있는 도구로 지으셨습니다. 전대미문의 홍수 사건을 대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혹시나 한 사람이라도 방주에 타지 못했을까 봐,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중에 어떤 짐승도 방주에 타지 못했을까 봐 하나님은 살피고 또 살피시다가 마지막에 노아가 방주에 탄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 손으로 직접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섬세하고 세심한 분이십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섬세한 모습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천지창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창조의 영광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가 창조의 영광으로 창조했으니 첫날 인간을 만들겠다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빛도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도 없습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나뉘지도 않았습니다. 먹거리도 없습니다. 에덴동산도 없습니다. 캄캄한 흑암천지에 만약 인간이 창조되었다면 흑암 가운데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섬세하게도 모든 것을 다 창조하고 만드신 이후에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에덴동산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먹거리도 풍부하고 해와 달과 별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여러 짐승들도 있는 그곳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섬세하게 인간을 위해 배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실 때도 역시 섬세하게 세웁니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세운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일찌감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훈련시키는 데 초기 40년은 이집트 궁전에서 훈련시켰습니다. 바로의 딸, 공주의 양자가 되어서 훈련시킵니다. 안전하게 그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집트에서, 그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에서 리더십 교육을 잘 받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나중에 그가 이스라엘 지도자가 되어야 하니까 40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40년, 그가 교만이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을 때 광야로 그를 인도하십니다.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게 하셨습니다. 처가살이 40년을 통해서 그의 머릿속에 있던 교만의 때를 다 벗겨 내십니다. 그리고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에 깊은 영성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초기 40년은 세상의 지성을 배우게 하시고, 중기 40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성의 깊이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지성과 영성이 겸비된 이후에 마지막 40년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하시고 출애굽의 지도자, 리더가 되게 하셔서 그를 통해서 출애굽의 큰 대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섬세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큰 스케일도 갖고 계시고 아주 작은 것도 섬세하게 살피는 디테일도 갖고 계십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다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통이 크고 스케일이 큰 사람은 섬세함이 떨어집니다. 섬세함이 강한 사람은 통이 크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케일도 가지고 있고 디테일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