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도 극작가∙연출가
#극작가의쉼 #레지던시 #뮌헨 #여행과집필 #일중독자 #한량
<aside>
올해 2월 10일에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으로 떠났고 최종 귀국은 7월 1일이었으니 2025년 상반기의 거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괴테문화원과 바이에른주 국립극장 레지덴츠테아터가 공동주최한 국제극작가축제(Welt/Bühne Festival)에 참여하느라 매년 찾아갔던 도시였던 뮌헨이지만 몇 달씩 머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레지덴츠테아터 2024/2025 시즌 레퍼토리로 제작되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77가지 시도>(이경성 연출)라는 제목의 신작을 공동창작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극장 측의 상주 극작가 집필실과 숙소 제공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레지던스참가지원 또한 보태어져 장기 체류가 가능해졌습니다.
해외에서의 레지던시는 처음이다 보니 설렘과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곳 생활을 시작해보니 예상과는 딴판이었습니다. 당장의 신작 작업과 상주 극작가로서 행사를 해내느라 뮌헨 중심가 20분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지냈던 것입니다. 작업에 있어서 새로운 자극과 작가적 경험을 기대했었던 저의 머릿속에 줄곧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해외 레지던시란 과연 무엇인가.
모든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뮌헨 탈출을 감행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저 지냈습니다. 귀국까지 남는 3주 동안은 여행만 다니겠다는 다짐으로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의 미케네 섬에 있는 집필실에서 음악 틀어 놓고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다는데 어떻게 자발적으로 그럴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일본 소설가는 그리스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선 여행을 위해 돌아다니느라 글 쓸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염원 끝, 마침내 6월 10일,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남은 3주 동안 사나흘에 한 번씩 저가항공 비행기를 타고 처음 가보는 국가의 도시로 향하는 일은 처음엔 해방감을 줬지만 당연하게도 체력적으로 점점 지쳐갔습니다. 몸에 무리가 가다 보니 보충이 아니라 고갈에 이르는 여정이자 어떤 측면에선 고행처럼 되어갔습니다. 기왕 유럽 온 김에 한 곳이라도 더 보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휩싸여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제가 경험한 좋은 레지던시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몰입/일-쏟아내기의 시간으로서 레지던시이고, 다른 하나는 휴가/쉼-채우기의 시간으로서 레지던시입니다. (작가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때는 일시적으로 일중독자가 되어 성취감 하나로 살아가다가, 또 어쩔 때는 그저 뻔뻔한 한량이 되어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쁜 레지던시는 전자도 후자도 되지 못하고 어중간할 때입니다. 초조한 마음만 들고 작업에는 몰두하지 못할 때, 그럴 때면 괜히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눈을 뜨면, 지금 이곳, 한국입니다. 돌아오고 나면 언제나 꿈꿨던 거 같고, 모든 게 지난 생에 있었던 일처럼 여겨집니다. 스마트폰 속 사진과 영상이 명백한 증거로 남아 있지만 말입니다. 떠돌던 시간들은 마침내 끝납니다. 지난 시간들은 귀국 후 시차적응과 더불어 급속한 미화의 과정 속에 추억으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 계절이 거듭 바뀌었고 한국사회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2025년 하반기의 한국으로 레지던시를 온 게 아닐까요. 이번에는 좋은 레지던시를 하게 될지, 나쁜 레지던시를 하게 될지 한 번 두고 보려고 합니다.
</aside>
<aside> ✏️
이홍도 (극작가∙연출가)
작 <구미식><꿈의 연극 -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뮤직페스티벌><베케트 몽타주>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미국연극/서울합창> 외 공동작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77가지 시도><없는 극장><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 외
수상 2022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예술 부문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18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가상 가작(공동 수상)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