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욱 배우
#배우의쉼 #50시간프로젝트 #신체훈련 #요가 #웨이트 #발레 #연습실 #오늘좋았어!
<aside>
연극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름방학을 재미있게 보낼 궁리를 하다가, 학교 선배였던 손상규 배우와 함께 ‘50시간 프로젝트’를 고안했습니다. 주 5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총 50시간을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적으로 매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6개의 주제를 가지고 총 6주간 진행되었습니다. 매주의 주제는 각각 사진/영화보기, 영화공부, 신체훈련, 극작, 영화만들기 였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보기’ 주간에는 오전 10시에 모여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밤 10시까지 (당시는 DVD로) 영화를 보는 일만 하는 겁니다. ‘신체 훈련’ 주간에는 새벽 5시 30분에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해서 배우훈련과 관련된 활동뿐만 아니라 요가, 웨이트, 발레, 명상, 구기 종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중간에는 체력 보충을 위한 낮잠 시간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는 하루만 참여하거나 그냥 구경 오는 것도 가능하여 그때그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효용이나 성과보다는 ‘즐거움’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함께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노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었지요.
그 이후에도 ‘이런 걸 다 같이 모여서 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여러 가지 임시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창작과 관련된 연습이나 훈련을 ‘취미’로 삼을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단한 성과를 목표로 하지 않고, 대략적인 흥미만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 즐거움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재미가 사라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느슨함도요.
저는 작업이 없을 때도 연습실을 빌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합니다. 저만을 위한 이런저런 ‘연습’을 만들거나, (공연할 계획이 없는) 퍼포먼스의 한 조각을 짜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냥 빈둥거릴 때도 많지만 꽤 흥미로운 발견이나 작지만 멋진 사유를 건지는 날에는 ‘오! 오늘 좋았어!’하고 기뻐하며 연습실을 나섭니다. 연습실에서 혼자 즐기는 취미 하나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시간을 쌓아 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작업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연을 만드는 일에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따라붙습니다. 관객을 상정하고 작업할 때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쉽게 물리칠 수 없습니다. 워크숍이나 스터디, 리서치라고 불리우는 활동도 목표와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면 쉽게 시작하지도 쉽게 그만두지도 못하고, 기쁨과 즐거움은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처음에는 분명 즐겁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새 의무와 압박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창작과 관련된 활동을 ‘취미’로 대할 수 있는 순간이 큰 힘이 됩니다. 잘해야 한다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생기 넘치는 상태에 머무는 것, 그리고 그 생기를 몸에 채우는 일은 작업자로서 꼭 필요한 ‘쉼’이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허술한 프로젝트든, 혼자서 하는 무언가이든, 앞으로도 저는 연습실에서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더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만난 생기를 가지고, 잘해야 한다는 걱정을 주는 그 작업들을 잘 헤쳐 나가고 싶습니다.
</aside>
<aside> ✏️
양종욱 (배우)
양손프로젝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연 <파랑새><데미안><기존의 인형들> 외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