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땅에 덮이니 (창7:6-12)

플라톤이 쓴 『국가』 제2권을 보면 '기게스의 반지'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리디아 왕국에 기게스라는 양치기가 살았습니다. 그는 왕이 맡긴 양들을 돌보는 평범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날도 양을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혼비백산하여 양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고 난 후 뒤를 돌아다보니 땅이 꺼지면서 동굴 입구가 보였습니다. 그 동굴로 들어가 깊숙이 들어가 보니 거대한 청동 말이 서 있었습니다. 말 덮개를 열어 보니 시체가 누워 있었는데, 시체 손가락에 반지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반지를 빼서 자기 손에 끼고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그가 왕궁에 들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맡겨진 양의 숫자를 한 달에 한 번씩 보고하는 날이었는데, 왕궁에 양치기들이 모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장난삼아 자기가 낀 반지를 한쪽 방향으로 돌려 보았는데 갑자기 기게스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려 보니 다시 나타났습니다. 마법의 반지를 얻은 것입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때 그는 나쁜 마음을 먹습니다. 리디아 왕국 최고의 미인이었던 왕비를 겁탈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후에 그는 내친김에 왕까지 살해하고 리디아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왕이 된 사람 아닙니까?

1. 성공의 참된 기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과연 성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 있게 그가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왕비를 겁탈하고 왕을 살해했습니다. 절차와 과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왕이 되려면 왕자 시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백성에 대해서, 나라와 국방과 외교에 대해서도 학업과 지식을 쌓아가야 하는데 그는 그런 과정을 다 생략하고 건너뛰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플라톤은 그 뒤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리디아 왕국을 통치했을 때 어떤 식으로 다스렸는지 눈에 뻔하지 않습니까? 공포정치를 했을 것입니다.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신하들 사이를, 백성들 사이를 다니면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을 색출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니 결국 그렇게 나라를 통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성공 지상주의, 결과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성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가 존경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에 서면 과거의 비리와 비행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물쩡 넘어가 버립니다. 몇 마디 사과로 과거의 일들을 덮으려고 합니다. 자신은 성공했으니 이제는 괜찮다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결국 성공 지상주의가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시고 무엇을 실패라고 규정하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1. 노아의 120년

6절 말씀을 보십시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가 육백 세 되던 그해, 그때 홍수가 땅에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80세부터 시작해서 600세까지 120년 동안 열심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 건조를 명령하신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노아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방주를 짓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방주를 통해서 죽어 가는 이 시대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예배 공동체를 떠나간 하나님의 아들들이 방주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또한 가인의 후손들, 사람의 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방주를 120년 동안 지었습니다.

노아에게 120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오늘 우리 중에 누구도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 본 사람은 없습니다. 120년을 살아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의 무게와 길이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노아의 120년은 외적인 고통의 기간이었고 내적인 고민의 시간이었습니다.

외적인 고통의 기간이었다 함은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방주를 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가 자손들인 셈과 함과 야벳을 500세가 지나서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방주를 짓기 시작한 480세부터는 노아 혼자 이 어마어마한 거대한 방주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처음이 어렵습니다. 처음 그 얼개를 잡고 방주의 크기를 재고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그는 방주 제작의 거의 절반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기계가 있습니까? 장비가 변변합니까? 기계나 장비가 없던 시절에 하나님의 방주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는 육체적인 고난과 난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견딜 만했습니다. 몸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내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영혼의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아는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주셨는데, 120년 동안 이렇게 성실하게 일을 감당했건만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이 방주에 탄 사람이 없단 말인가?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는 존재인가?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는데 한 사람도 탑승하지 않고 동물만 탔습니다. 동물만 잔뜩 태우고 노아의 가족들만 태웠습니다.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지 않고 7일 동안 또 기다리십니다. 노아는 동분서주하며 불철주야 열심히 방주 밖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단 한 사람도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1-2. 하나님의 평가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실패한 사역자였는가? 객관적으로,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사역자입니다. 방주에 단 한 사람도 태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영혼 구원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는데,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으니, 한 사람도 태우지 못했으니 실패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노아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하십니다. 6장 22절과 7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명령을 다 준행하였더라"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20년 동안의 방주 명령도 준행했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명령도 다 준행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 7장 1절에 보면 노아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을 하나님은 직접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하나님은 칭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이 시대의 탁월한 의인으로 칭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며 인간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규모를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이 정도 숫자는 되어야, 이 정도 돈은 벌어야 성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속에 그런 기준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 숫자를 충족하지 못하면, 그 규모를 맞추지 못하면 감히 성공이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숫자나 규모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적 동기와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과 생각과 계획까지 다 살피시는 분입니다. 어떤 의도로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는 분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과정에 성실하라, 도덕적이어야 한다, 너는 성실하게 내가 부탁한 일을 열심히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노아 같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