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타입 리퀘스트 @ 헬로러브
♪Billie Eilish - What Was I Made For?:: https://youtu.be/cW8VLC9nnTo?si=K18sR7vLOJq75KWT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각, 복도를 따라 늘어선 등롱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며 장기판처럼 짜인 저택은 어둠 속에 잠겨갔다. 작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숨마저 눈치 보며 쉬어야 할 시간이었다. 문지방 아래로 스며드는 외풍은 얇은 다다미 바닥을 타고 발목을 핥았다. 검은 목책 너머로 펼쳐진 고요는 경계가 아닌 감옥처럼 느껴졌다.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오늘 밤의 감시 순번은 누구인지, 어느 집 아이가 벌을 받고 있는지는 벽 하나 너머로 훤히 들려왔다. 비록 내 방이라 불리긴 했지만, 제대로 된 공간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다다미 한 장 남짓한 좁은 방. 기둥에 붙은 종이 부적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스럭거렸다.
「統制行動」 통제하고 행동하라
이 짧은 네 글자는 이곳의 삶을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었다. 가문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의심 없는 복종과 즉각적인 수행뿐이었다. 그 안에서 망설이거나 흐트러질 여지는 없었다.
하루 종일 훈련장에서 무릎을 꿇고 버틴 끝에 돌아온 이 방은 마땅히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다미는 차가웠고, 공기는 묘하게 눅눅했으며, 벽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손바닥엔 멍이 들고, 무릎은 얼얼했다. 피가 나거나 살이 찢어지는 일쯤은 누구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나는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간헐적으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숨소리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방 안은 어둠과 정적에 완전히 잠겨 있었다. 그 고요를 깨듯, 복도 끝에서부터 익숙한 발소리가 가볍게 울려왔다.
기척 하나 없는 울림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계단을 올라 천천히 이 문 앞에 멈추기까지 나는 눈을 감은 채로도 그 존재를 알아챘다.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 시간, 이 문을 주저 없이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외, 이 낡은 저택 안에서 유일하게 나를 또렷이 봐주는 사람이었다.
곧이어 문이 벌컥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내 앞에는 손위 누이, 세키가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몸에 맞지 않는 검은 덧옷을 걸치고, 머리는 대충 묶여 마구 헝클어진 채였다. 맨발로 차가운 복도 바닥을 딛고 있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등 뒤에는 붉은 천으로 단단히 감싼 낡은 도가 매달려 있었다. 말없이도 그녀가 막 임무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