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프리랜서 6년 차가 된 2024년. 4년 정도의 짧은 직장생활 동안 배운 점도 많았지만, 스스로의 심신을 갉아먹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이 이래서는 국제개발협력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너무 싫다! 내가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퇴사와 창업을 저질렀다. 일종의 나만의 커리어, 나만의 활동을 찾아 나선 셈인데 그 삶이 이제 6년 차를 맞이한 것이다.

처음 프리랜서를 시작할 땐, 스스로 돈을 벌고 싶었다. 월급 말고 매출로서. 이 목표는 나의 국개협 첫 커리어였던 현지 파견 생활 동안 삼은 것인데, 그 계기는 내가 맡은 사업이 지역 주민의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획한 미소금융(Microcredit)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1, 2년 차를 보내는 주니어로서 프로젝트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졌다. 스스로가 일을 굉장히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답답하고 불쾌했는데, 물론 사업을 끌어갈 만한 연차가 아니었고 홀로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는 외로운 환경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이 일을 할 마음을 먹은 사람으로서 이는 꽤 말이 되는 핑계거리였을 뿐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곰곰이 따져봤다. 나는 왜 일을 못하는가. 그리고 여러 이유 중 하나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즉, 돈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었다. 20대 내내 편의점, 웨딩홀부터 시작해서 출장부페, 프린터 공장, 자동차 공장, 학원 등에서 일하며 알바비, 월급으로 열심히 살아봤지만 따지고 보면 나만의 유무형 어떤 것과 자본을 교환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20대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마는 어쨌거나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했다. ‘돈도 만들어본 적 없는 나 같은 애송이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소득증대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창업을 꼭 해보자'.

창업 외에도 ‘개발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자’, ‘나만의 국개협 분야를 정하자’는 다른 두 가지 목표도 있던 터라,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개발학 석사 과정과 기후환경 분야를 선택하여 일과 학문을 병행하며 본격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 창업 아이템이 당시에는 사업 아이템으로, 현재는 강의 아이템으로 쏠쏠하게 써먹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빗물로 만든 맥주'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맥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밌는 방법이라는 테마 하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 다양한 민간,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꽤 재밌게 도전했었다. 이런저런거 다 떼고 나면 결국 적자였지만, 창업 단계를 밟으며 매출을 올리는 경험 만큼은 도파민을 마구 찍어내는 즐거움이었다. 이렇게만 해나가면 조만간 성공한 소셜벤처 창업가가 될 것이라는 핑크빛 미래에 휩싸였고, 이런 망상이 스스로가 상당히 심각한 대가리 꽃밭임을 반증함을 알면서도 그 달콤함에 취해 꿈에서 깨지 않고 싶었다(난 MBTI에 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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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추억이 된 빗물맥주. 맛있어서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은 길게 하지 못하고 접었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였다. 다양한 연결을 통해 빗물맥주를 스케일업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에 재택근무와 9시 영업 제한이 걸리며 맥주 사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를 깊게 고민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린워싱이었다. ‘내가 하는 사업이 실제로 기후환경에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친환경이라는 이미지에 편승하여 이른바 환경 장사를 하는건 아닐까?’ 하는 질문. 누군가는 이를 환경운동가의 지나친 양심이 아니냐고 일컫기도 했지만, 이 질문은 ESG 평가, 소셜 임팩트 측정과 같은 요즘 한참 핫해진 툴에 중요하게 들어가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기후환경의 심각성에 공감하여 이 영역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아프지만 발견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를 맥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서울에서 빗물을 급수 트럭에 싣고 경기도 구리에 있는 브루어리까지 옮겨야 했는데, 빗물 20톤을 실은 급수 트럭이 시동을 켜고 엑셀을 밟는 순간 시커먼 매연이 동화 금도끼은도끼의 산신령이 출현하듯 뿌옇게 주변을 뒤덮었다. ‘아… 이거 친환경 맞나…?’

그렇게 우리 사업의 원료 생산, 가공, 운송, 폐기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반의 환경 영향을 뜯어봤다. 이른바 전과정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스스로 해본 것인데, 이대로 간다면 결론은 그린워싱이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맥주라고 했지만, 물을 빗물로 바꾼 것 외에는 기후변화 대응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물론 맥주 한 잔을 만드는 데에 물이 여섯 잔 필요하므로 정수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이 적은 빗물로 대체하는 것은 꽤 의미가 있는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어려웠다. 이와 같이 친환경성을 과대·과장 홍보하는 것을 그린워싱 중에서도 그린라이팅, 그린라벨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생수 라벨이 잘 떨어지게 바꾼 정도로 ‘에코', ‘친환경', ‘지구를 구하는' 따위의 수식어를 붙이는 오바스러운 행위다. 빗물맥주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보리·홉 등 필수 원료의 친환경성, 맥주를 생산하기 위해 끓이고 식히고 숙성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의 친환경 전환, 운송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병·병뚜껑 같은 폐기물에 대한 고민까지 충분히 친환경성을 담아냈어야 했다. 물론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를 모두 적용해서 기후위기 시대에 완전히 들어맞는 제품을 찍어내는 데엔 당연히 한계가 크지만, 그럴려면 ‘Don’t drink this beer’ 같은 판촉을 하는 게 아니라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수식어는 적절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자본과 기후변화의 관계를 함께 공부하며 누군가 한다면 응원하겠지만 굳이 나까지 제조업으로 지구를 구하겠다는 다짐은 안 해도 되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더 이상 유사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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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4년. UN 지속가능발전목표의 기한도 6년 남짓 남았다. 그리고 수많은 국가가 내건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의 목표연도도 그러하다. 하지만 매해 업데이트되는 신뢰도 있는 보고서의 내용은 갈수록 암울하다. 티핑포인트니, 탄소예산이니 하는 등의 잔여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예를 들어 1년 전엔 10년 남았다던 티핑포인트가 올해는 5년 남았다는 식이다. 영화 여고괴담 속 귀신이 3단 점프로 다가오는 듯하다. 어떤 과학자는 이미 티핑포인트가 지났다고 예측하기도 하고. 그런데 과연 한국의 그린 ODA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까? 다양한 관련 현장을 방문하지만 항상 물음표가 붙는다. 그것도 아주 큰 물음표.

난 그린 ODA를 포함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개발협력은 현재와는 다른 차원의 지구시민사회를 함께 그리고, 더욱 전향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현 체제를 적당히 고쳐 쓰는 방식은 이미 정부와 기업이 취하고 있으므로. 그 선택은 되게 무언가를 해결하는 듯하지만 온실가스 감축과 생물다양성 확보를 포함한 기후환경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으므로. 그래서 국제개발협력만이라도 그놈의 돈돈돈, 자본자본자본 좀 내려놓고 진심을 다하면 좋겠다. 탄소가 눈에 보이면, 온실가스가 눈에 보이면 조금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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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도 그러하다. 사고가 나야 가까이 있는 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