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번역가

번역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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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

일본어 번역가.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생의 실루엣』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아무튼, 하루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공저)를 썼다.

사노 요코,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야모토 테루, 가쿠타 미츠요, 니시카와 미와…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작가의 이름 옆에는 언제나 ‘이지수’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단순히 낯선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넘어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한 인간의 본연의 생각을 전하기. 번역은 “상대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건네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해줄 그의 언어가 더욱 기대됩니다.

아무튼, 하루키』가 말해주듯이 하루키를 향한 마음으로 일본어와 인연을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 왜 하루키였나? 그리고 왜 하루키인가?

중학생 시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하루키를 만나 어느덧 30대 중반의 일본어 번역가가 되었다. 열다섯의 내가 매료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하루키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이런 게 ‘어른의 삶’이구나 싶었달까. 모든 사물에 대해 냉정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무척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닮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을 따라 듣고, 어떤 사람은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찾아다닌다던데, 나의 경우 하루키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 일본어라는 언어였던 셈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그 타향의 침대 위로 데려간 것도 하루키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들과 함께 나는 내가 원래 속했던 곳에서 나날이 멀어져갔다. 나날이 낯설어졌다. 나날이 가벼워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아무튼, 하루키』 중에서)

텍스처픽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최애’ 하루키 문장은 무엇인가?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한,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에서)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작업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가의 작업이 있다면?

가쿠타 미쓰요(『아주 오래된 서점』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는 번역하기에 편안한 문체여서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여느 작품보다 작업 속도도 빨랐다.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지만 비범한 데가 있다고 할까. 실제로도 유머러스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의 소설을 꼭 번역해보고 싶다. 또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참 좋아한다. 그의 산문집(『고독한 직업』 『료칸에서 바닷소리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이상향에 가깝다. 유머러스하면서 동시에 반짝이는 통찰이 배어 있다. ‘본인의 모습을 이렇게 다 보여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한 글이다. 문제는 번역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글이라는 것. (웃음) 그를 아끼는 편집자와 역자의 바람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아서 아픈 손가락 같은 작가다.

“정말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놀랄 만큼 사고가 유연해서, 자신의 영역과 동떨어져 보이는 유파나 새로운 대상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경쟁심이자 도전 정신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요소, 훔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탐욕스러움이다. 그런 어린애 같은 경쟁심을 내버리는 순간부터 인간의 화석화는 확실히 시작된다. 과거의 유산을 고집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일이다.” (니시카와 미와, 『고독한 직업』 중에서)

번역을 하다 보면 글을 쓴 이가 어떤 사람인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번역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사람으로 다가왔나? 그가 말하는 ‘작은 이야기’가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