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과거였다. 본인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탓에, 아주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각박했다. 특히 ‘공부’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예민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조금씩 심해지던 공부에 대한 강박은 고등학생 때 절정을 달렸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일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웠다. 친구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의 학교생활이 민주에게는 버거웠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존감은 끝을 모르고 떨어졌고, 떨어진 자존감은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웃팅을 당했다. 믿었던 친구에게만 살짝 말해줬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전교생이 알고 있었다. 수인이 평범한 인간보다 많은 세상에, 그런 게 뭐 대수라고 그러는지. 물론 성 지향성을 알고도 주위에 머물러 주는 친구는 많았다.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복도를 거닐 때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임에도 버겁다고 느껴질 만큼. 본인의 sns 계정에 올려놓은 익명함으로 혐오 발언 테러를 받는 등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연애는 꾸준히 했다. 대부분 50일도 못 가서 헤어지긴 했지만. 민주가 먼저 이별을 고한 적은 없다. 전부 상대방 쪽에서 먼저 이별 의사를 표했다. ‘너는 너무 소심해’, ‘남자답지 못하네’, ‘너무 여자 이름이라 부를 때 기분이 이상해’ 등의 말로 이별을 받았다. 보편적인 연인처럼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역할을 민주가 해주길 바랐지만, 자신이 원하는 만큼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니까, 전부 언뜻 보면 남자 같은 외형만 보고 사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민주가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본 이유이다.
성인이 된 이후 학생 때 연락하던 친구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아니, 민주가 본인에게 오는 연락을 거의 확인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민주는 학생 때의 친구들과 계속 연을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과거가 자꾸 떠오르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떠오르게 만드는 원인들을 하나둘 지워갔다. 살고 싶어서. 학생 때의 기억은 민주를 좀먹어갔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했다. 부적응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자퇴 이후로는 자취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끼니는 대부분 라면, 삼각김밥 같은 편의점 음식.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하다못해 숨 쉬는 것조차 귀찮았다. 민주는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본인도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걸 자각은 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 그저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며 담배를 피우는 게 전부인 삶. 가끔은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는 게 전부인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