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연출가
#태국 #맵고달고짠 #쉼의장소 #아무것도하고싶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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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해외여행은 히말라야였습니다. 작업이 힘들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 모든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어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당시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히말라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히말라야를 오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내 돈을 들여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지?’ 히말라야는 저에게 적절한 쉼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국 방콕이라는 곳을 경유했고 신세계를 만났습니다. 그게 시작이 되어 저는 지금까지 20여 년간 되도록 매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국에 가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엔 방콕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더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리고 지금은 태국 최남단에 있는 외딴섬이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쉼의 장소입니다.
저는 왜 태국에 가는 것일까요?
아토피가 심한 저에게 태국의 습도와 온도는 건강한 피부를 제공합니다. 맵고 달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저의 입맛에 태국 음식은 딱 맞습니다. 바다를 좋아하고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태국은 안성맞춤입니다.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태국은 연극을 하는 저에게 부담이 덜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제가 신경을 쓸 사람도 태국에는 없습니다.
일 년 내내 작업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지칩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습니다. 태국이라는 세계에 가면 제가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국적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한국에서 작업하던 저는 제가 참 작은 인간으로, 그동안 고민해 온 큰일들이 작은 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명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태국에 갑니다.
태국에 가면 전 돌아다니지 않고, 늘 가던 조용한 그곳으로 가서, 한자리에 멈추어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하기, 생각하기, 또 생각하기를 하게 됩니다. 주로 하는 생각은 ‘연극이 내 삶을 끌고 가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일부인 연극을 끌고 가야 하는데 주부가 바뀐 것은 아닐지? 올해는 또 어떤 공연이 내 몸을 통과했고, 나는 그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내년엔 또 어떤 이야기를, 어떤 작품으로 하고 싶은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친절한 자기계발서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며 나라는 사람을 소중하게 안아줄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이 과정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멈추어야 시작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지금 무언가 지치고 힘든 분들이 있다면, 스스로 잠시 멈추기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잠시 멈춘다고 뭔가 크게 변하지는 않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춘 상태가 내 앞날의 방향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물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저는 제 침대 이불 안에서 태국의 에메랄드 바다를 상상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여러분에게 모든 일을 제쳐두고 무작정 쉼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궁금합니다. 여러분에게 쉼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우리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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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연출가)
DAC Artist 극단 신세계 대표 및 상임연출
작∙연출 <하미> 공동창작 <부동산 오브 슈퍼맨><김수정입니다><별들의 전쟁><생활풍경> <공주(孔主)들><망각댄스_4. 16편><이갈리아의 딸들><파란나라> 외
수상 2021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생활풍경> 2021 월간 한국연극 선정 ‘2021 공연 베스트 7’ <생활풍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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