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아이들>, 희곡과 과정에 대한 기록
본 작품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2025 꿈의 극단 기획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극작 워크숍 및 낭독공연이다. ‘꿈의 극단’은 아동·청소년을 문화예술교육의 수혜자나 연습생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로 설정하는 정책 사업이며, 이번 시즌의 대주제는 「사생활: 사사로운 일상생활」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결과물로서의 공연 완성도를 앞세우기보다, 청소년이 예술적 언어와 처음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를 가시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번 작업은 청소년 예술가들과 잘 어울리는 극작가 배해률, 제작사 네버엔딩플레이와 함께 진행되었다.
청소년 참여자인 고윤정, 곽예지, 김한비, 김현진, 오정민, 장서현, 주아린, 한예진은 이 작품에서 단순히 대본을 읽는 낭독자가 아니라, 극작 워크숍을 거쳐 무대에 오른 작가-배우로서 낭독 퍼포먼스를 수행하였다. 이 공연은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라기보다, 관계와 미완을 전제로 한 공개적인 실험의 장에 가깝다. 관객 역시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자리한 혼합 관객이었고, 그로 인해 이 무대는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라기보다 청소년의 언어를 성인이 ‘함께 듣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지점에서 공연은 교육과 발표, 연습과 공연 사이의 경계 위에 놓이며, 바로 그 경계성이 이번 작업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곰과 아이들〉이라는 희곡은 가출 청소년과 돌봄의 문제를 다루지만, 익숙한 구도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가출 청소년을 돌보는 어른들은 더 이상 명확한 악당으로 설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온전한 보호자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보험사기를 통해 돌봄의 비용을 마련하고, 그 비용 위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분명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그러나 희곡은 이 선택을 윤리적으로 단죄하거나 교훈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돌봄이 지속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윤리적·정서적 비용을 무대 위에 그대로 남겨둔다. 이 점에서 〈곰과 아이들〉은 ‘옳은 돌봄’이나 ‘대안적 가족’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현실의 복잡한 조건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인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곰’은 이러한 태도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다. 곰은 우화적 상징처럼 등장하지만, 단순한 비유로 환원되지 않는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놓인 이 존재는 때로는 보호의 이미지로, 때로는 위협의 실체로 나타난다. 그림자극과 형상을 통해 구현된 곰은 현실의 동물이기보다는, 인간 세계의 선택과 욕망이 만들어낸 모호한 결과물에 가깝다. 희곡은 곰을 설명하지 않고, 곰을 둘러싼 상황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관객과 배우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는 청소년에게 모든 것을 명확히 이해시키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존재와 함께 머무는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희곡의 구조 또한 청소년 연극이라는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곰과 아이들〉은 명확한 성장 서사나 극적인 전환을 제공하지 않는다.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기보다 반복되고, 인물들은 크게 변모하지 않는다. 가출 이후의 삶은 대안이 되지 못하고, 유사가족의 형태는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일 뿐 언제든 균열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인물들이 중년이 되어도, 이 작품은 극복이나 성공의 서사를 말하지 않는다. 희곡이 도달하는 지점은 ‘나아짐’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그 시절의 선택을 뒤늦게 지각하는 상태다. 이 선택은 청소년 연극에서 흔히 기대되는 희망의 메시지와는 다른 결을 갖지만, 오히려 현실을 단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읽힌다.
이러한 희곡의 성격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인물과 관계를 오가며 연기하는 방식과 맞물린다. 한 명의 청소년 배우는 아이이자 어른이 되고, 돌봄을 받는 존재이자 돌봄을 제공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이는 연극을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인물의 감정을 깊이 분석하거나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훈련이라기보다, 관계의 위치가 바뀔 때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에 가깝다.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보다,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망설이는 존재로 인물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험은 연극을 통해 타인의 삶을 판단하기보다, 잠시 다른 위치에 서 보는 연습으로 작동한다.
관객의 반응 또한 이 공연이 놓인 지점을 잘 보여준다. 다양한 세대를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즉각적인 즐거움이 감지되었고, 그림자극과 곰의 형상이 등장할 때는 신기함과 호기심이 뒤따랐다. 반면 보험사기라는 설정이나 곰에게 위해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당황스러움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당황은 작품의 과잉이라기보다, 연극이 판타지의 언어를 통해 현실에 접근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각의 흔들림으로 읽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불안정함 속에서도 청소년과 판타지성이 비교적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판타지는 현실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현실은 판타지를 교훈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곰과 아이들〉은 청소년 연극이 반드시 따뜻한 위로나 명확한 교훈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대에서 한 발 물러선다. 이 작품은 청소년에게 사회를 정확히 비판하라고 요구하지도, 어른의 윤리를 대신 판단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연극이라는 매체가 동시대/동시간의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청소년들은 아직 현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에, 연극은 정답이 아니라 탐색의 장으로 기능한다.
‘꿈의 극단’ 1년차 사업의 맥락에서 〈곰과 아이들〉은 완결된 성취라기보다, 분명한 출발로 기록될 만하다. 이 공연은 청소년과 연극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단계, 그 첫 만남의 감각을 비교적 정확한 거리에서 포착한다. 아직 서툴고 낯선 지점들이 남아 있지만, 바로 그 낯섦이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한다. 〈곰과 아이들〉은 도착한 연극이 아니라, 연극을 배우고 연극을 생각하기 시작한 자리로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