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사생활을 연극으로 상상하는 방식, <비밀 대본>

〈비밀 대본〉은 ‘사생활’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그것을 고백이나 폭로의 형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공연은 말해지지 않던 것들, 혹은 말해질 수 없었던 상태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스마트폰을 보며 읽는 방식, 편지를 읽는 방식, 쪽지와 메모를 낭독하는 형식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이 작품의 핵심적인 언어다. 누군가를 향해 또렷하게 발화하기보다는, 이미 쓰여 있었거나 남겨진 텍스트를 더듬듯 읽어 나가는 방식은 ‘비밀’이라는 컨셉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형식적 선택은 ‘귀신이 말한다’는 설정과 결합하며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이미 죽어 있다는 전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발화의 자유를 넓힌다. “이번 생은 망했거나 끝났”기에 더 말할 수 있다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조건을 비틀어 드러내는 장치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말할 수 없었던 것들, 혹은 말하지 않는 것이 요구되었던 감정들이 귀신의 목소리를 빌려 흘러나온다. ‘사생활(私生活)’을 ‘사생활(死生活)’로 풀어낸 재치랄까. 이 유머는 웃음을 유발하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청소년이 얼마나 제한된 발화 조건 속에 놓여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비밀 대본〉이 제기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청소년에게 비밀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과거처럼 숨기고 싶은 사춘기의 내면만을 의미하는가.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오늘날 청소년의 내면은 미디어를 통해 과잉 노출되고 있으며, 복잡하고 개별적인 감정들은 ‘행복함’, ‘만족’, ‘반항’과 같은 몇 가지 키워드로 단순화되어 소비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착취는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다. 〈비밀 대본〉은 비밀을 숨김의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비밀을 ‘자기돌봄’의 한 방식으로 재-위치시킨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두는 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기 코멘트들,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말들이 이 작품이 말하는 ‘비밀 대본’이다.

무대 위에서는 여덟 명의 청소년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비밀에 접근한다. 이 공연이 특히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점은, 비교적 단일하고 균질한 집단(고교생)으로 보이는 10대 여성들이 등장할 때다. 이 균질함은 개성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조건과 또래성을 공유하고 있기에, 각자의 말투와 리듬, 망설임과 속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무대에서 청소년들은 하나의 대표적인 ‘청소년 상(像)’을 연기하지 않는다. 대신 저마다 다른 감각과 태도로 파편화된 장면들을 통과한다. 그 파편들은 하나의 서사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지만 느슨한 지형도를 형성한다. 이 지형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청소년의 존재성이다. 참여자인 곽소윤, 김리나, 김명현, 박수영, 오하음, 장연재, 전아린, 최윤서는 자연스러운 자기 말하기를 통해 각자의 존재감을 눈부시게 뿜어냈다.

공연의 구조 역시 이러한 파편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복면을 쓴 진행자(주은길)는 마치 클럽의 DJ처럼 장면을 넘기고, 장면들은 하나의 게임 스테이지처럼 해결되거나 해소된 뒤 다음으로 이동한다. 힙합적인 리듬, 라임을 타는 말들, 장면마다 깔리는 비트, 정색하며 장면을 종결하는 방식은 청소년 문화의 감각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리듬은 빠르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고정된 ‘나’를 전제하기 어려운 상태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한다. 현실과 가상 세계가 분절되고 새로운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구성은 오늘날 청소년이 놓인 조건과 닮아 있다. 일종의 숏폼적 감각을 연극의 형식으로 옮겨온 셈이다.

공연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소리의 질감이다. 완전히 정제된 발성이 아니라, 읽다가 멈추고 숨을 고르며, 때로는 여러 목소리가 겹쳐 의미가 흐려지는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미완의 소리는 결함이 아니라 상태다. 실수가 아니라 실험이다. 특정 구간에서 발생하는 집단 발화와 합창은 치밀하게 조율된 결과라기보다, 여러 존재가 동시에 말하기 시작하며 우연히 형성된 화음처럼 들린다. 이러한 소리의 구조는 〈비밀 대본〉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잠시 형성되었다가 흩어지는 공동의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낭독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음향적으로는 완성도 높은 사운드 퍼포먼스로 읽힐 만한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청소년 연극에 붙어온 이데올로기를 한 번 더 밀어내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아직 모르는 존재’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틀에서 벗어나, 이 공연은 청소년 스스로 말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청소년들이 사회로부터 강요된 청소년성을 까는(?) 장면이며, 자기가 되고/하고 싶은 청소년-연극을 말하는 순간이다. 이는 청소년-연극주의의 해체를 넘어, 정치적으로 대상화되어온 ‘청소년’이라는 범주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동안 청소년극은 성인 극작가에 의해 ‘대신 말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교육과 결합되며 청소년의 고유한 발화성을 축소해온 측면도 분명히 존재했다. 〈비밀 대본〉은 그 구조를 완전히 전복하지는 않지만, 대등한 협업 가능성으로서의 창작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이 공연에서 청소년은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잠시 발견하는 경험을 관객과 공유한다. 그러한 나는 어른들이 보기에 기특하고 대견한 존재라기 보다는, 조금 귀엽고 적당히 퀴어하며 완전히 이상한 존재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를 추동하게 하는 ‘청소년의 사생활’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연극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꿈의 극단’이라는 이름이 청소년의 장래를 계몽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청소년극의 미래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비밀 대본〉은 그 가능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 정진새 (극작가,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