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분야] 수상작


🥉[우수상] 윤O영 - 잊지 못할 저마다의 사춘기

Ⅰ. 들어가며

글솜씨가 뛰어나진 못하다. 그럼에도 글을 써보기로 결심한 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느낀 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약 100일의 시간 동안 6명의 아이들과 만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시작하기 전에,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해야 될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 'ㄱ'도 관심이 없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매일을 놀던 아이였다. 공부보단 친구가 좋았고, 때문에 친구들과 놀기 위해 학교에 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무렵 어울리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이유도 모른 채. 너무나도 어렸기에 충격이 컸고,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아닌, 학교를 나와야 하는 다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눈길을 돌린 곳에 공부가 있었다. 사실, 학교를 가는 본 목적을 그제서야 알아차린 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고, 집에 와서 배운 걸 정리하고 복습하며 조금씩 공부가 재밌어졌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많이 올랐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125등이었던 내가 전교 6등으로 졸업을 했다. 덕분에,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인기도 많아져 반장도 했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내가 가르쳐준 게 도움이 됐다는 친구들이 좋았고, 그렇게 점점 공부의 매력에 빠졌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고, 고등학교 때도 성실히 학교를 다닌 덕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충청도의 아주 작은 시골이지만, 내가 대학을 간 지역은 서울이었다. 1학년 때는 코로나로 인해 여러 제약이 있어 내가 서울로 대학을 온 건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서울이라는 지역과 인서울 대학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배운 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커졌다. 서울도 나에겐 너무 작은 도시로 느껴졌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가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지금은 유학을 준비 중이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넓은 곳으로 나오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었다. 시골 지역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이었다. 서울에 와서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공유하며 무조건 느끼는 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역별 교육 빈부격차는 굉장하다는 것이다. 시골의 아이들은 누릴 수 있는 교육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서울 아이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지만, 내가 스스로 깨우쳤던 사실들과 입시 관련 유용한 정보들을 교육이 낙후된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정이 어떨지 몰라도, 많은 아이들이 더 넓은 곳으로 나와 꿈을 펼치길 응원하게 됐다. 그 과정 속 만나게 된 게 EBS 교육멘토링이었다. 멘토링 수업을 하며 매번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매번 웃음만 가득했던 수업의 연속이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속에서 나는 아이들과 정이 들었고 내 20대 시절 잊지 못할 한 페이지를 장식해준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별 거 아닌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길 바라며.

Ⅱ. "내 눈 속의 사과"같은 아이들

  1. 우린 앞으로 가능하면 만나지 않도록 해요.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부모님들과 수업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전화를 드린다. 제일 먼저 연락을 드린 부모님은 O호 어머님이었다. 어머님께서 전화를 빨리 받으셨고, 수업과 관련하여 어머님께 특별히 원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여쭤봤을 때 아이가 꽤나 모범생인 것 같았다. 자기주도학습도 이미 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 내가 조금만 잡아주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학생이 어떤 아이일지 한껏 기대를 머금은 채 수업 날을 기다렸다.

담당 학생의 나이는 열다섯. 흔히 말하는 중2병이 오고도 남을 시기였다. 외모에도 한창 관심이 많고 예민할 나이다. 그런데, O호를 처음 마주한 나는 입가에 미소부터 짓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열다섯의 남자아이가 앞머리를 한껏 묶어올린 사과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아이가 더욱 궁금해졌다. 첫 만남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O호의 꿈은 의사였다. 멘토링을 해오며 꽤나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장래희망이 의사인 친구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외과의사가 꿈이라고 했다. 그 연유를 들어보니, 부모님이 뇌 쪽으로 많이 아프셨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을 살려주셨고 그 후로 O호는 본인도 외과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기특했다. 벌써부터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어린 나이에 조금은 이기적이고, 성숙하지 못해도 괜찮은데 O호의 속은 참 깊었다. 수업 태도도 늘 싹싹했다. 동시에, 욕심도 많았다. 때문에, 내가 담당한 학생 중 진도가 가장 빨랐다. 아이가 잘 따라오니 덩달아 나도 욕심이 생겼고 더 많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제공받은 교재 외에 내가 직접 만든 보충자료도 보내주게 되고 수업시간에 교재 외의 내용을 가르쳐주는 일도 빈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