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사랑]

“뭐 먹고 시퍼” 본가에 가겠다는 계획을 말하면 엄마는 항상 문자로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다. 먹고 싶은 걸 말해놓고 본가에 도착하면 반찬들이 자기 먼저 먹어보라고 뽐내듯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는 튀김가루와 부침가루를 섞은 반죽에 표고버섯을 튀겨 새큼한 탕수육 소스를 부어 놓기도 하고 양배추, 깻잎, 오이를 어슷 썰어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다진 마늘, 식초와 동치미 국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면 면을 버무려 쟁반냉면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찬 바람 부는 계절에는 냉동꽃게와 숭덩 썰은 무를 넣고 된장을 푼 꽃게찌개와 그 옆에 뚝배기에서 들썩이는 계란찜이 올라올 때도 있다.

만찬을 즐기고 나서 배 통통 두드리며 냉장고를 열면 층층이 쌓아놓은 반찬통들을 발견한다. 방공호 속 비상식량 같은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게 다 뭐냐고 물으면, “너 집에 가져가서 두고 먹으라고.” 계란을 삶아 달큰하게 졸인 장조림부터 각종 나물 무침과 양파, 오이, 고추를 넣고 간을 딱 맞춰 식초와 간장, 설탕을 넣어 재운 피클까지. 계절마다, 때마다 제각각 다른 종류로 채워진 반찬통들이 레고처럼 쌓인 모습을 보면 엄마는 마술지팡이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마법사 같기도 하다.

엄마는 요즘 뭐가 힘든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묻지 않는다. 밥은 먹었는지부터 묻고 내게 부족한 건 오로지 ‘밥’인 것처럼 무슨 반찬이 먹고 싶냐고만 묻는다. 밥만 챙기는 엄마가 서운한 마음이 들던 어린 시절을 지나 한 끼를 잘 챙기는 일이 수고스럽다는 걸 알게 된 이제는 그게 엄마의 사랑 방식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사랑을 투박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날에는 나 역시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가장 먼저 끼니는 잘 챙겼는지부터 확인한다.

아기새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처럼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늘어놓는 사랑을 그대로 답습하다 내 방식의 사랑을 한 숟가락 더한다. “너 요즘 신경 쓰는 게 많은 것 같아서 버섯누룽지탕 끓여봤어. 따끈하게 한 입 먹으면 머리가 한 김 식지 않을까.” 땀 뻘뻘 흘리며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는 대신 묻는다. “우리 같이 뭐 해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