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이지만 서울 사람은 아님

강현주 극작가연출가


#서울사람 #우리말 #사투리 #교정 #리듬과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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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경이 지방 소도시야?’ 이 질문을 몇 번이나 받고서야 나에게 서울은 여전히 ‘타지’라는 걸 알았습니다. (서울살이 13년 차, 서울 시민이지만 서울 사람은 아님) 새로 구상 중인 작품의 배경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방 소도시로 설정한 후,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인물들이 사투리를 써야 할까?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서 지역 정서를 담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지금 내가 관객을 만나는 지역이 서울이기 때문인데, 그건 관객 대부분이 서울 혹은 수도권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만약 작품의 배경지에서 공연하고, 지역 배우가 출연한다면 고민 없이 사투리를 썼을 겁니다. 또 한 가지, 시점이 현재라는 겁니다. 시대극에서 사투리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현대극에서 사투리는 열등하거나 낡은 말이라는 인식이 남아있고, 웃음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예로 <배를 엮다>라는 공연을 올렸을 때 한 인물을 경상도 출신으로 설정했습니다. 우리말과 사전 편찬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도 다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대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인물에 대한 설명을 에세이처럼 써보았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어릴 때 친구와 절교했던 일 따위를 쓰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면 인물의 성격이 구체화되고 대사에 언어습관으로 그 성격이 드러났습니다. 이 인물은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상경했습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불안한 상황에서도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해냅니다. ‘사투리도 우리말’이라며 방언 수집 과정을 즐겁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인물의 언어습관에는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올라간 후 예상 못 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건 실제로 들었던 말입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투리를 못 고쳤다니까 어딘가 부족해 보여.”

사람들은 사투리를 ‘고친다’, ‘교정한다’라고 말합니다. 사투리가 ‘바로잡아야 하는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나 봅니다. 그 인식이 공연에서 인물을 볼 때 불필요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방 출신의 배우들은 대부분 서울말을 배우고, 익힙니다. 대학 입시를 볼 때도 서울말로 연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앞서 말한 공연에서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사투리가 부자연스럽다.”(해당 역을 맡은 배우는 경상도 출신이었지만 미디어를 통해 사투리를 접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서울말도 사람마다 말의 리듬과 억양이 다른 것처럼 사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말이 변화한 것처럼 사투리도 변화합니다. 지역 사람들이 느끼기에 사투리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오히려 미디어 속 사투리는 더 강하고 획일화된 느낌도 있습니다. 연극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도 그렇습니다. 현대의 사투리를 무대에서 본 적이 있나 가만 생각해 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현대의 사투리는 분명 그 지역의 현재 정서를 담고 있을 테니 언젠가 무대에서 듣게 된다면 참 반가울 겁니다.

예전에 한 소설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서 비린내가 나!!’ 그만큼 말맛이 생생했거든요. 아마도, 이번엔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지역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언어가 빠질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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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극작가 ∙ 연출가)

DAC Artist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연극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 <잘못된 성장의 사례> 각색/연출 <배를 엮다> 구성/연출 <시장극장> 연출 <99%천재일기>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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