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앞 챕터에서 두 번이나 언급되었지만 우리가 단 한 발도 다가가지 않은 플로리아니란 누구인가?

독자들은 기다려주기 바란다. 여주인공 집의 문을 두드리려다 보니, 아직 남주인공도 제대로 소개를 마치지 않았고, 여전히 이 인물을 이해시키려면 쓸 분량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 독자보다 고압적이고 참을성 없는 존재도 없지만,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의 전체를 드러내야 하는데, 말하자면 그는 하나의 세계이며, 모순과 다양성과 비참함과 위대함, 논리와 모순이 충돌하는 드넓은 대양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간략한 챕터 하나로 끝나기를 바란다고! 아니, 나는 여기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기에, 여기 충분한 시간을 들일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이 읽기 지친다면 넘어가도 좋다. 하지만 후에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잘못이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소개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사람이다. 나는 그가 젊고, 잘생겼고, 체형이 아름답고, 예의바르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는 그 점을 이해시킬 수가 없다. 소설의 남주인공이란 다 그런 법이고, 내가 묘사하고자 하는 주인공은 내가 실제에서든 허구에서든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굉장히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학자들이 식물이나 광물의 향을 묘사할 때 ‘이 물질은 고유한 향이 있군요’라고 하는 것처럼 애매한 말을 한 사람의 본능에 적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유한’이라는 말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로스발트 공자 카롤에게는 설명 가능한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겠다.

그는 좋은 교육과 타고난 매력에 힘입어, 겉보기에는 그를 모르는 사람들조차 기쁘게 만들 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 덕에 그는 성공하기 쉬웠다. 그의 가녀린 몸매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의 노력 없이 이루어진 풍부한 지적 발달이나, 점잖고 남을 기쁘게 하는 대화는 깨인 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세련됨이 부족한 이 사람들은 카롤의 우아한 예절을 동경했고, 이들은 솔직하고 선한 천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그저 의무감 혹은 동정심의 발로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이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그는 다정한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생각대로 그것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의 몇 안 되는 애정 표현이 그렇게 강렬하고, 깊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그는 언제나 사랑을 받았는데, 그것은 상대방도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면, 최소한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이 동반된 관계였다. 그의 젊은 동료들은, 그가 신체 활동에서 나약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우유부단한 천성을 경멸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카롤이 이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망상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기를 하는 동안 그는 풀밭에 점잖게 앉아, 슬픈 미소를 짓고는, ‘사랑하는 친구들, 재미있게 놀게. 나는 레슬링도 달리기도 할 수 없으니. 자네들은 옆에 와서 쉬고’ 라 말하곤 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종종 그 중 가장 강건한 자들이 자신의 치열한 운동을 포기하고는 카롤에게 와서 함께 하곤 했다.

카롤의 시적인 생각과 우아한 정신에 이끌리고 사로잡힌 이들 중에서도, 살바토르 알바니는 늘 가장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이 선량한 청년은 솔직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카롤은 그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살바토르는 감히 카롤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법이 없었다. 종종 카롤로부터 과장된 원칙이나 괴벽한 습관을 발견했을 때 조차도. 살바토르는 다른 사람들이 자주 그랬듯, 카롤이 마음이 상해 그에게서 냉담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살바토르는 카롤-정말로 아픈 때보다도 초조하고 예민한 때가 더 많았던-이 자신의 불편을 어머니에게 숨기기 위해 방 안에 틀어박혀 오히려 어머니를 크게 걱정시켰을 때, 카롤을 아이 다루듯 보살폈다.

따라서 살바토르 알바니는 어린 공자에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살바토르도 그것을 느꼈고, 청춘의 혈기가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밀어붙일 때에조차, 그는 자신의 쾌락을 희생하거나 관대한 위선으로 그를 은폐했다. 스스로에게 카롤이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카롤은 더 이상 자신의 관심을 용인하지 않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치명적인 고독 속에 빠져들 거라고. 즉, 살바토르는 카롤이 자신을 필요로 하기에 그를 사랑했고, 기이한 자비심에 빠져 구세대적이고 숭고한 이론들에 빠져들었다. 그는 스토아 학파적인 인내심을 동경했지만, 그 자신은 에피쿠로스 쾌락주의자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전날 밤의 소동으로부터 지친 채, 그는 침대 옆에서 금욕주의적인 책을 읽었다. 그는 순진하게도, 자기 친구의 삶을 채울 독특하고, 유일하며, 흔들릴 줄 모르고, 끝없는 사랑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믿었지만, 그는 로맨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몇몇 연애 사건들은 카롤에게 비밀로 했다.

이 순진한 연기는 얼마 가지 못했고, 카롤은 슬프게도 그의 친구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시련이 닥칠 때마다, 살바토르는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카롤은 살바토르가 마음이나 정신 양면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계속해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전보다 애정은 훨씬 덜했으나, 여전히 살바토르를 꼭 필요한 존재로 붙잡아두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여전히 카롤은 살바토르의 젊은 치기를 이해할 수 없었고, 살바토르에 대한 애정은 그의 습관적인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살바토르는 카롤보다 로스발트 공작부인의 엄격함을 훨씬 두려워했으므로, 카롤이 공포를 느끼며 발견했던 것들을 공작부인에게 최대한 비밀로 하였다. 그녀 역시 죽기 전 앓았던 길고 고통스러운 지병 때문에 만년에는 훨씬 눈썰미가 둔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가 차갑게 사망한 모습을 본 카롤은, 짓누르는 듯한 절망에 빠졌고, 오직 살바토르만이 전력을 내어 카롤이 따라 죽으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카롤이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죽음을 본 것은 두 번째였다. 한 때 그는 운명의 상대였던 젊은 여성을 사랑했었다. 그의 인생에 로맨스라고는 그것 하나 뿐이었고, 때가 되면 그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 사랑할 대상이라고는 살바토르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살바토르를 사랑하였으나, 절제되어 있고 괴로워하였으며, 제 친구는 자신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일종의 시기심 역시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다.

이 마지막 재난으로부터 6개월 후, 둘 중 더 예리했던 로스발트 공자는 용감한 친구에게 억지로 이끌려 마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살바토르에게는 쾌락과 쾌활이 필요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바 ‘살바토르의 응석받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살바토르는 ‘내 예쁜 아이입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로스발트가 어머님과 저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았든, 그의 마음도 인격도 흐트러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강압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고, 감사할 줄 알며,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리 작은 관심이라도 알아차리고 제 정성에 감사하는 것 이상으로 대응하거든요’

이것을 인정한다면 너그러운 일이 되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카롤에게는 어떠한 사소한 결함도 없었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거대하고 비자발적이며 치명적인 단 하나의 결함이 있었다. 마음을 열고, 일반적인 너그러움을 받아들여 인간사에 대해 폭넓은 판단을 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는 미덕이란 악덕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라 믿으며 복음서의 숭고한 진실에 대한 신앙을 인정했지만, 그 뜻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천국에서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100명의 의인보다 기뻐한다는 사랑, 간단히 말하자면 예수의 모든 가르침에 스며 있고 그의 모든 말 위에 덮여 있는 본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설령 방황할지라도 혼자서 차가운 길을 바로 걷는 자보다 위대하다는 진실을.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카롤은 함께 하기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모든 종류의 친절함이 그에게 드문 우아함으로 나타났고, 그가 감사를 표할 때면, 우정에 충분한 보상이 될 만한 큰 감정이 따라왔다. 그가 그 끝을 예견하고 싶지 않아했던 영원해 보이는 고통을 겪을 때에도, 그는 살바토르가 카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한 수 접은 것처럼 체념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은 카롤의 섬약한 건강은 심하게 나쁘지는 않았고, 중병으로 위기를 겪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지 않는 습관으로 인해 그는 자신이 어머니보다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그는 매일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느낀다고 상상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채, 살바토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숨긴 채 도움을 받아들였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젊음이 주는 영웅적인 무심함으로 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적어도 그 예감을 씁쓸한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확신에 빠져, 그는 매일매일 인류로부터 관심을 끊었다. 더 이상 그는 인류와 무관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의 악은 그와 남남이 되었다. 그는, 아마도 하느님이 지상에서의 시간을 조금만 주셨기 때문에, 악에 대해 고민하고 투쟁할 임무도 주지 않은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어머니의 미덕 덕분이라고 생각했으며, 사람들이 악덕에 대한 처벌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그는 자신에게 저와 같은 추락이 아니라 원죄를 씻기 위한 시련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내세에 대해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가 신비로운 몽상 속에 빠지곤 했다. 본질적으로는 카톨릭 교리들이 기반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그의 시적 상상력이 대담하게 뛰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그의 본능이나 행동 원칙은 절대적이었으나, 그의 종교적 신념은 상당히 모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감정과 영감에만 기반하여, 수고로운 검증과 이성의 권리, 그리고 논리적 실마리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던 교육의 결과였다.

스스로 학업을 추구하거나 파고든 적은 없었으므로, 그의 마음에는 거대한 빈틈들이 있었다. 그 빈틈들은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메웠는데, 신의 절대적인 지혜와 인간에게 비추어지는 불충분한 빛을 끌어 메운 것이었다. 이 역시 카톨릭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보다 더 어리고 예술적이었던 카롤은 자신의 무지를 이상화했다. 말하자면, 그는 이 끔찍한 빈 자리를 낭만적인 관념들로 채웠다. 천사, 별, 우주에서의 숭고한 비행, 그의 어머니와 약혼녀 사이에서 자신의 영혼이 쉴 미지의 장소- 그것이 낙원이었다. 그는 지옥은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순결하다고 느꼈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가 만약 정말로 그의 세계에서 죄 지은 영혼들은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야 했다면, 그는 죄인들의 고통을 끝없는 바다의 파도, 고지의 소란, 가을 밤의 불길한 소리들, 영원한 침묵속에 묻었으리라. 모호하고 유혹적인 오시안의 시가 로마의 도그마와 함께 스쳐갔다.

살바토르의 단호하고 직설적인 손은 이 섬세하고 복잡한 악기의 모든 현을 감히 조사해볼 수 없었다. 그는 따라서 그는 이 비범한 구조물 안에 들어있는 강함과 약함, 위대함과 불완전함, 끔찍함과 우아함, 끈기와 변덕을 모두 알지 못했다. 만약 카롤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를 속속들이 알아야 했다면, 살바토르는 얼마 되지 않아 포기해버렸을 것이다. 이런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니까. 그리고 이해하게 된 시점에서조차,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인내해야만 이런 사람들의 내면의 삶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