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어떤 의견이 생기고 진짜 징후보다 못하지 않은 의견의 전염성 같은 것 말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어떤 종교, 원리원칙, 광신주의에 몸을 맡긴다. (중략)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진짜 정신적인 돌연변이의 산물이 된다. (중략) 사람들은 자신들과 생각을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면,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떤 괴물을─예를 들면 코뿔소를─보고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들은 순진하며 동시에 잔혹하다. 당신들은 그들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의 역사는 그런 변화를 경험한 인간들이 코뿔소와 비슷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아니, 그들은 진짜 코뿔소다.
작가 이오네스코의 고향, 루마니아를 덮친 나치즘의 영향으로 쓰인 「코뿔소」는 일상에서 인간이 코뿔소로 변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코뿔소가 되어버린 코뿔소-인간 무리와 인간 사이의 대립, 그리고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으면 코뿔소 무리는 나치즘을 포함한 전체주의, 혹은 더 나아가 사회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표현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포식자처럼 무시무시한 동물이 아닌 코뿔소로 만든 것에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코뿔소는 기본적으로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는 동물이고, 작가에 따르면 공격성과 복종성을 동시에 가진 동물이다. 이오네스코는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 인간이 가진 동물성에 집중하여 그들에게 코뿔소의 마스크를 씌운다. 이 글에서는 「코뿔소」 전반의 특징을 살펴보며 작가 이오네스코가 특히 열중한 언어의 붕괴, 의미가 결여된 언어에 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현시대의 우리가 부조리극을 읽는 것에 대한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조리극이라는 장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부조리극(The Theatre of the Absurd)이라는 단어는 영국의 극작가 마틴 에슬린의 저서 「부조리극」에서 처음 쓰인 단어다. 저서에서 에슬린은 부조리극의 특징으로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꼽는다.
인간존재의 현실은 부조리한데 그것을 조리 있게 표현하면서 인간과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주의극이나 자연주의극이 어떤 의미에서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부조리함을 부조리한 그대로 드러내는 부조리극이야말로 현실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조리극은 내용도 형식도 부조리한 것, 즉 “내용과 형식의 일치”가 특징이다.
-「부조리극」, 마틴 에슬린/김미혜 옮김 (한길사, 2005) 16p.
그래서인지 부조리한 현실을 닮은 듯 작품 1막에서는 의사소통이 과연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신기한 장면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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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 그럼 다리가 여섯 개인 고양이 한 마리가 생길 수 있겠군요…….
베랑제 그 공연은 우리 시대의 예술적 삶을 체험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겠군.
노신사 (논리학자에게)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도 없겠군요.
베랑제 그래, 자네가 옳아. 자네 말대로 세상 돌아가는 걸 좀 알아야겠어.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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