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맥스웰의 색팽이
B: 나는 색상을 보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꼭 우리의 창조적인 능력의 향상과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보는 능력에 가해진 제약이 그 자체로 창조성의 조건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A: 더 많은 색상을 보게 될 수 있다면 창조적 표현 능력도 향상되는 것 아닌가?
B: 아니라니까.. 여하간, 만약 색상을 보는 우리의 능력이 자외선과 편광을 포함하여 수십차원의 색공간을 볼 수 있는 갯가재의 그것처럼 향상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A: 뭔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두 가지 다른 색상 사이의 스펙트럼을 무한히 미분할 수 있는 색상 감지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극점의 색상¹에 다다를수록 플리커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
B: 플리커? 색상이 우리 시야의 프레임레이트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인가?
A: 그런 셈인가. 각 색상에 고유한 플리커가 존재한다고 치면, 예컨대 청색에 가까워지면 플리커가 심해지고, 적색은 가장 적은 플리커를 지니고..
B: 청색이 적색보다 처리 부하가 더 많이 드는지?
A: 아니, 그 반대다.
B: 반대로 모호한 색상일수록 가장 플리커가 심하게 발생하고, 색공간의 극단*에 가까워져야 플리커가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혼동을 줄이기 위해 극단 영역의 색상을 제외하고 다른 색상의 사용을 금지하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플리커가 없는 색상공간만을 활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정도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헛소리를 이어가던 와중 둘은 담배를 피우러 테라스로 나갔고, 건물의 벽면에는 단 하나의 픽셀만 살아서 깜빡이고 있는 고장난 LED 전광판이 걸려있었다.
대화를 복기하기 위해 갯가재의 색각에 대해 좀 더 알아보던 와중, 색공간 자체는 무한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색상의 극단’이라는 것 자체가 미개발된 인간 색각을 기준으로 제안된 것이므로, 애초에 ‘향상된 색상을 볼 수 있게 된 인간’이라는 문제는 제 3종 오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정보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계열로써만 전달 가능한 것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음악의 문제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자크 랑시에르, <픽션의 가장자리>. 1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