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1-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아멘.
오늘은 베드로전서 두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한 바에 의하면, 베드로는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고 그는 사실 경험한 것이 굉장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경험한 기적이 거듭남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거듭남을 주는 것이라고 아주 자랑스럽고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 백성, 곧 거듭난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썩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2장 말씀을 나눕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성도가 버려야 할 것과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읽은 말씀에 나오는데, 거듭난 성도라면 모름지기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있고 절대로 붙들고 있으면 안 되는 것,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합니다. 각각 그냥 툭툭 던진 말 같은데, 이것을 조합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조합해 보면 전부 다 상대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악독을 행하고, 누군가를 기만하고, 누군가에 대해서 외식하고, 누군가를 비방하는 말을 하고. 그래서 거듭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행동, 이런 일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성도가 이렇게 할까 싶어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보면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 이 중에 내가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악독이라고 하니까 좀 뭔가 꺼림칙하긴 한데, 비방하는 말 정도는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군가 상대방을 대해서 항상 이런 관계 가운데 얽히고설켜서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를 베드로가 지적합니다. 성도는, 적어도 거듭난 성도라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내가 거듭난 성도로 살고 싶고, 좀 품위 있게 살고 싶고, 좀 폼나게 살고 싶고, 격조 있게 살고 싶은데, 왜 자꾸 제삼자 누군가를 비방하고 마음속에 시기가 생기고, 그 시기가 조금 더 지나면 악한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요? 내가 원래 글러먹어서 그런 겁니까? 나라는 인간이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겁니까? 그 뒤에 이제 유추할 수 있는 이유가 나옵니다.
2절에 보니까 '갓난아이들같이'라고 합니다. 갓난아이 길러 보신 분들, 지금도 기르고 계신 분들 아시겠지만 갓난아이는 다른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잖아요. 별로가 아니라 오직 갓난아이가 신경 쓰는 것은 딱 한 가지, 엄마입니다. 엄마만 신경 쓰잖아요. 엄마가 젖을 주니까 엄마만 신경 쓰고, 갓난아이만큼 집중력이 뛰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목숨 걸고 젖을 물고, 목숨 걸고 자기 생존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엄마를 바라보는지 몰라요. 우는 것도 우렁차게 울잖아요. 지금 제가 마이크 들고 하는 목소리보다 여기 이 본당 안에 갓난아이 하나가 그냥 살짝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울림이 크잖아요.
갓난아이가 그만큼 목청도 좋고 울림도 크고, 자기 전 존재를 다해서 엄마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들같이'라는 말은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어디에 집중하라? 뒤에 나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제 좀 배운 사람들이라 이 정도 되면 알 수 있습니다. 신령하고 순전한 젖이면 이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순전한, 아돌로스(ἄδολος)는 '순수한', '오염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것이 하나님 말씀의 특징이잖아요. 오염된다는 것은 어디에 오염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오염시킵니까? 사람이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강단에서 가르치고 선포하는 목회자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염시킬 위험이 상당히 큽니다. 주로 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냥 말씀 자체만 그대로 전해야 하는데, 자기 사상과 자기 철학과 자기 욕심을 거기에 물타기 해서 전하면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오염시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정말 사모해야 할 것은 오염되지 않은 말씀, 순전한 말씀, 사람의 철학과 사람의 생각으로 물타기 된 말씀이 아니고 순도 100%의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신령한'이라는 뜻이 나오는데, 우리가 신령하다라고 하면 뭔가 좀 구름 위에 한 단계 떠 있는 것을 상상하기 쉬운데 그런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를 보면 로기코스(λογικός)라고 되어 있어요. '합리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logic'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말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성경 말씀 읽어 보면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오염되지 않고 합리적인, 말이 되는 그런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즉, 앞의 말과 1절을 연결해서 보면, 우리가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뒤엉켜 살면서 남을 비방하고 시기하고 악독한 마음을 품고 그렇게 사는 이유는 순전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닌 다른 데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일에 자꾸. 그러다 보니까 자꾸 얽히고설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가장 관심 가져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관심 가져야 할 것.
거듭난 성도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거기에 가장 먼저, 갓난아이들처럼,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면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주로 말씀이 없으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그 말씀에 대한 열심이 없으면 이런 일에 자꾸만 휩싸이고 부차적인 일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시끄러운 것입니다. 시끄러운 교회 보십시오. 분열되는 교회 보십시오. 말씀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성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성장하게 하는데, 그 성장의 끝이 무엇입니까? 구원에 이르도록. 구원에 이르도록. 이것은 우리가 1장에서 본 것과 똑같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된다고 했잖아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을 가장 많이 곁에서 보고 경험한 제자이지만,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을 만하잖아요. 이런 수제자 베드로께서 말씀을 강조하고 계시니까 우리가 믿고 따를 만하잖아요.
3절 보시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맛보았으면. '맛보다'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규오마이(γεύομαι), '경험적으로 알다'입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어린아이처럼 사모해서 그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 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