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2) 구원과 화평 (엡2장)

오늘은 '구원과 화평'이라는 주제로 에베소서 2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1장 말씀에서는 신령한 복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었습니다. 신령한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완벽하게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구속이 있고 죄 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구원이란 무엇인지,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화평, 그리고 그 이후의 은총과 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구원에 대하여

1-1. 구원받기 전의 상태

구원받기 전 에베소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사실 이것은 구원받기 전 에베소 교회 성도들 상태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상태를 보면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나는 어떠했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기 전에 내 마음의 상태, 내 육신의 상태, 내가 행동했던 행동거지들이 어떠했는지를 보면 너무 명확하게 잘 나타납니다.

1절을 보시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구원받기 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였습니다. 허물과 죄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둘 다 결국 하나로 '죄'라고 묶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허물과 죄를 나눠서 구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허물은 조금 소극적인 의미인데, 해야 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허물이라고 말합니다. 즉 내가 부모로서, 성도로서, 교인으로서, 자녀로서, 사회인으로서, 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을 허물이라고 합니다. 비겁해서 하지 않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 귀찮아서 하지 않고, 무서워서 하지 않고, 그렇게 묻어버리고 지나가는 것들이 다 허물입니다. 이 허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쌓이게 됩니다. 하루에도 허물이 얼마나 많이 쌓이겠습니까?

죄는 무엇입니까? 죄는 좀 더 적극적인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내가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죄 짓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죄가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조금 더 적극적인 것이고 허물은 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허물이나 죄의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었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이것은 과거 완료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것입니다. 죄는 곧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 지었는데 살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죄 짓고 세상에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은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흙과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의 결합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육체, 즉 흙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영이 죽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영이 죽은 것인데, 그냥 멀쩡하게 밥 먹고 출근하고 가정생활하고 걸어 다니니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예민하게 보면 영이 죽어 있는지 영이 살아 있는지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육체의 소욕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사는 사람은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내 영이 육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내 영이 육체의 욕망을 통제하고 육체의 욕망을 다스려 나갑니다.

항상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육체가 계속해서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육이 살아 있고 영이 죽은 사람은 그냥 속절없이 끌려 다니다가 인생이 끝납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 있는 사람, 허물과 죄에서 건짐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육체를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큰 차이입니다. 우리 상태를 우리가 압니다. 내 상태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우리가 이 믿음의 눈으로 가족을 보고 사람을 보고 가까운 분들을 보면 저분이 영의 사람인가 육의 사람인가 하는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냥 신령해 보이고 목소리가 특별하다고 해서 그것이 신령한 사람이 아니고, 내 영이 육을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1-2.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특징

이어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를 설명합니다. 2절에 "그때에 너희는" 즉 죽어 있었을 때 너희는 "그 가운데서"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첫째,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은 이 세상 풍조를 따릅니다. 이 세상 풍조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유행을 따르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즉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다가 볼일 다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 풍조는 항상 일정합니까, 바뀝니까? 바뀝니다. 계속해서 바뀝니다. 그런데 그 바뀌는 것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따라다니다가 정신 못 차리다가 그냥 죽어버립니다. 나중에 힘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이 세상 풍조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이 없으니까, 자기 말씀의 기준이 없으니까 세상이 좋다는 것을 다 따라다닙니다. 그렇게 해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니까요.

둘째,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누구입니까? 제가 옛날에 소년부 교육 전도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이 본문을 읽었는데, 우리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저에게 "이건 공군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 "아, 성경은 공군을 이렇게 표현하는군요"라고 하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아이의 시각으로는 이것을 공군이라고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아, 이건 공군이 아니고 사탄이란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꼬여서 혼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자는 공군이 아니고 사탄입니다. 사탄, 성경은 이 정체를 이렇게 밝힙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시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특징이 나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두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살인자요, 진리가 없는 자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특징입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사탄의 특징, 살인자. 칼로 사람을 찔러서 살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편 가르기를 해서 사람을 고립시켜서도 살인을 할 수 있습니다. 외롭게 만들어서, 그리고 그 사람을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서도 살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분열의 영입니다. 그 분열의 끝은 무엇입니까. 그 인격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인격을 죽이고, 그것이 사탄이 하는 일의 마지막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사탄이 이 공동체에서 역사한다, 사탄이 우리 가정에 혹은 내가 있는 어디에 역사한다면 그것에는 반드시 분열이 있습니다. 누구 하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을 죽일 때까지 몰아갑니다. 지금 세상에서 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세상에 어떤 사건 사고가 벌어지면, 문제가 생기면 이 마녀사냥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어느 정도까지 하고 그냥 거기서 그쳐야 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을 때까지 몰아버립니다. 그것이 사탄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살인한 자라 했으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행동하고 좋은 일을 하고 그 공동체를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부터라도 지켜내야 합니다.

또 사탄은 진리가 그 속에 없습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변함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제, 오늘, 내일, 10년 전, 20년 뒤가 계속해서 바뀌는 것은 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똑같은 것, 동일한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심이 없으니까 세상 풍조를 따르게 됩니다. 사탄은 진리가 없이 계속 사람을 정신없이 쫓아다니게 만듭니다. 다른 일을 그래서 바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들은 바쁩니다. 세상에 속하면 너무너무 바쁩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계속해서 조장해서 우리를 진리인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탄의 정체입니다.

셋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의 특징이 3절에 나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다고 했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