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오늘은 고린도후서 공부 두 번째 시간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2절부터 2장 끝까지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바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아주 각별하게 생각했고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전서와 후서 두 번만 쓴 것이 아니라 네 번이나 썼습니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이미 고린도 교회를 두 번 방문했고, 추후에 또 한 번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도합 네 번 편지 쓰고 세 번 방문한 교회, 바울이 수없이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했지만 이런 교회는 유일했습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마음을 쓰고 많이 방문하며 편지도 많이 썼겠습니까?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자식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자식이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떻게 버릴 수도 없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가르치고 고쳐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그 뜨거운 열정으로, 아버지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를 사랑했던 마음들이 여기에 절절히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지난 시간에 1장 1절에서 11절까지 '위로의 하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로라는 개념이 그냥 곁에서 "괜찮아, 힘내, 잘될 거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 곧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복종시키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이 힘들 때 결국 진리의 말씀으로 승리하고 버텨내며 이겨냈습니다. 이어서 오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관련해서 자랑할 것 몇 가지는 항상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오늘도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합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라고 했는데, '너희'라는 말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입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행함'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행함이라는 말 앞에 있는 세 단어를 잘 보셔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직접 행동했느냐 하면, 첫째는 거룩함, 둘째는 진실함,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목회 방향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대할 때 이것만큼은 하나님께 자랑할 만하다, 너희에게 대하여 진심이 있고 자랑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하기오테스(ἁγιότης)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순수한 동기'라는 뜻입니다. 곧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서, 교회를 개척하고 섬김에 있어서 이 교회를 통해서 혹은 이 성도들을 통해서 다른 이익을 취해야겠다든지, 정말 이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 이외에 미워하는 마음 곧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절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마음, 그 동기가 아주 순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동기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 속마음이 어떤지, 계획하는 바가 어떤지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나는 순수한 동기였다, 분열되지 않은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진실함입니다. 이 진실함이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에일리크리네이아(εἰλικρίνεια)인데, 두 단어가 합성된 말입니다. 에일레(εἵλη)는 '햇빛'이라는 단어이고, 크리노(κρίνω)는 '판단하다'입니다.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을 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금이 갔는지, 얼룩이 묻었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이 물건을 햇볕 앞으로 끄집어내서 바깥에서 비춰 보는 것입니다. 햇빛 아래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안에서 내 심장을 꺼내 보일 수 있다, 내 진심을 하나님 빛 안에서 보여도 나는 진실하다, 그 정도로 자신의 진실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위로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이나 자기 힘이나 자기 의지로 목회한 적이 없다고 바울은 자랑합니다. 순수한 동기, 하나님 앞에 일점 부끄러움도 없이 햇빛 아래에서 판단받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로 일함, 이것이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주의 일을 감당하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모든 교회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주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여기에 다 담겨 있습니다.
순수한 동기로 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겠지, 누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누군가에게 칭찬받기를 바라거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교회 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어 경제적인 이익을 누리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순수한 동기가 아닙니다. 그것이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분열되고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빛 안으로 내 심장을 꺼내서 한번 비춰 보십시오. 얼룩투성이일 것입니다. 그렇게 행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의 물질로 일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는 바울처럼 거룩함과 진실함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은혜로 일하고, 이것이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평생 동안 교회를 섬겼습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했습니다 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래도 내가 한 교회를 40년 다녔더니 장로가 됐다"거나 "한 교회를 40년, 50년 대를 이어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됐다, 자녀들이 다 잘 먹고 잘 살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지금도 보란 듯이 살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자랑거리가 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