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장 20절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특강 두 번째 시간으로 2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1장을 살펴보았는데, 사실 서신서는 스토리가 있는 본문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할 때는 이해가 되다가도 조금 지나면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닌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은 기억하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룬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보겠지만,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가 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원래 본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을 본받는 자들이었지요. 그런데 그들이 성장하여 본이 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본이 된다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주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믿음을 보여주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까? 첫째는 회심으로 좋은 믿음의 소문이 났고, 둘째는 섬김으로, 셋째는 종말을 기다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성장했는지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처음에는 내가 누군가를 본받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본받는 누군가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교회에 대해서 대단히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살펴볼 2장 이야기는 바울이 "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목회할 때 이런 마음으로 목회했다"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회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성도를 대하는 태도,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사도이니 우리와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섬기며,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봐야 되는지를 오늘 2장 말씀이 아주 상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어디서 기록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차 선교 여행 중에 지금 데살로니가에서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고, 떨어진 곳에서, 고린도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헛되다'는 말에 헬라어 '케노스'(κενός)라는 말을 썼는데, 텅 빈, 공허한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썼을까요? 지금 바울은 이 교회를 개척해 두고 이 교회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의 세 도시를 다 다녔습니다. 첫 번째가 빌립보, 두 번째가 데살로니가, 세 번째가 베뢰아입니다. 여기를 다 돌고 지금 남쪽으로 내려와서 아가야 지방의 아테네를 지나서 고린도에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고난을 지금 매우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마음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개척한 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 살고 있다는데 그것을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영적으로는 이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아픕니다.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탄이 자꾸만 바울 속에 자신감 없는 이야기를 넣어 둘 수가 있습니다. "너 그 교회 개척하고 지금 같이 있지도 않은데, 그 교회 개척하고 그 성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함께 죽어야지. 넌 지금 여기 고린도에서 편지 쓰고 있고, 지금 그 성도들은 고난당하고 어려움 겪고 있는데, 그러면 네가 개척한 그 모든 수고는 헛된 것 아니냐?" 그것은 바울뿐만 아니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들, 거기를 소요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계속 혼돈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안다."
여러분, 사탄이 가끔 우리에게 속삭이지 않습니까? "열매가 어디 있느냐? 지금까지 신앙생활 오랫동안 했는데 너 열매가 있으면 한번 말해 보라고. 그냥 지금까지 왔다 갔다 하고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너의 집안이 잘 됐느냐? 네 자식이 잘 됐느냐? 네가 건강하기나 하냐? 열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을 가지고 계속해서 우리를 시험 들게 하면 그러면 우리 마음속이 자꾸 공허해집니다.
그런데 그때 한번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오늘 2장의 결론은 교회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교회는 사람입니다. 결국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오늘 읽었던 2장 20절 본문에서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헛되다고 말하지만, 그런데 헛되지 않은 것이, 남은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그 교회 성도들이 지금 이 고난을 잘 견디고 이겨내고 어쨌든 버티고 살고, 하나님 말씀대로 발붙이고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헛되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온 길을, 신앙생활한 것을 볼 때 허무하지 않으려면 사람을 남겨야 됩니다. 사람을, 사람을, 사람을 키워야 됩니다. 정말 믿음의 사람들을 잘 키워내고 길러내고, 이 사람들을 복음 안에서 잘 세워 보면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영광되고 보람된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2장 전체에 흐르는 맥락이고 주제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제 지난 시간에 서론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것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자기가 원해서 유럽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에 머물려고 했는데 에게해 바다를 건너와서 유럽의 북쪽 지역 마게도냐 지역의 세 도시를 갔는데, 첫 번째가 빌립보입니다. 빌립보에서 지금 바울이 무엇을 당했습니까? 고난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귀신 들린 여종이 점치고 있는 것을 고쳐 주었습니다.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 여종을 데리고 다니면서 점 보면서 이익을 삼았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바울이 끌려갔습니다. 정상적인 재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옷도 벗기고 그냥 매질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감옥에 쳐넣어 버렸습니다. 감옥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빛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지하 감옥에 발에는 착고를 채우고, 그리고 나서 그냥 던져 뒀습니다. 그것을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에서 고난당했고, 데살로니가에서 고난당했고, 어려움을 수없이 많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실라, 디모데 이 일행을 도우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