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특강 2 - 베들레헴에서 (룻 1:19-2: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룻기 2장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 2:3-4)

룻기 말씀을 우리가 지난주에 첫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룻기를 읽을 때는 그 배경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룻기의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역, 그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살게 하시고 레위인들을 48개 성읍에 흩으시고, 거기에서 직분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사명과 그 지역을 버리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좋은 지역으로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 지역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영적인 모든 질서가 무너진 시대가 사사시대였습니다.

그런 사사시대를 살아가는데 한 줄기 빛과 같은, 정말 보석 같은 한 가정,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룻이 있습니다. 그래서 룻의 일대기, 룻의 상황을 보면 '아, 정말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탁월하고 특별한 믿음의 일꾼이 나올 수 있구나'를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룻기 1장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고, 오늘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어서 1장과 2장 초반부까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룻이 지난 시간에 고백한 신앙고백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는데, 룻이 고백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이 고백은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신앙고백 한마디 때문에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 혈통상 이방인이지만, 율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단칼에 쳐버리고, 율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람을 죽여버리고, 뭐 이런 시대가 구약시대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성경은 하나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신앙고백이 바로 곧 은혜고 그 고백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저 시골 구석에서 과부 둘이 서로 껴안고 울고 고백한 그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나님은 보시고, 이 여인을 다윗 왕가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예수님 족보에 이름을 올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것이 첫 시간의 내용이었습니다.

1. 베들레헴 귀환

이제 오늘은 베들레헴에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고 했습니다. 떡집 베들레헴을 우리가 영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셨지만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은 곧 예수를 떠나는 것이고, 신앙을 버리고 떠나면 결국은 공허하고 빈 것이 되고, 가진 것 아무것도 없고 고생만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돌아오는 것이 은혜 아닙니까? 돌아가겠다고 결단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그런 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보여집니다.

1-1. 마을 사람들의 환대

베들레헴으로 나오미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나오미가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룻과 함께 왔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이, 이 마을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한번 보십시오. 19절입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르매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여러분, 이게 어떤 느낌이세요? 그 시대 그 장소에 내가 만약 가 있다면 환영하는 의미입니까, 아니면 막 손가락질하는 그런 의미입니까? 우리가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이 찌들어서 그래요. 아, 이게 손가락질한다고. 우리도 이미 '아, 나오미와 룻이 돌아오면, 아휴 그렇게 신나게 나가더니 호기롭게 나가더니 다 잃고 다 죽고 아무것도 없이 저렇게 이방 여인 하나 달고 들어오네.' 아, 그런 얘기하기 좋잖아요. 남 얘기하기 좋잖아요.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 베들레헴 사람들은 아주 특별합니다. 그래서 룻기를 교회론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좋은 교회,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로서 귀하고 진정한 교회, 공동체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근거가 어디 있느냐, 룻기 4장 14절과 17절 말씀을 보시면 이런 내용들이 나오죠.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을 이을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언제 이 여인들이 한 말입니까? 여인들은 베들레헴 여인들입니다. 나오미가 손자를 봤을 때,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을 때, 여인들이 이렇게 칭찬하고 함께 노래 부르고 기뻐해 준 것입니다.

17절에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이 동네 여인들이 이 아이의 이름을 함께 지어주는 이 공동체가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공동체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룻기 1장부터 4장까지 다 읽어 봐도 룻이 이방 여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오미에게 "이 여인이 이방 여인인데 왜 데리고 왔느냐, 왜 달고 왔느냐, 이거 법대로 해보자, 구약의 율법대로 적용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환대해 줍니다. 그냥 맞이해 줍니다. 나오미가 그냥 왔는데 "이가 나오미냐" 이런 느낌이죠. 정말 나오미가 돌아왔단 말이야. 정말 그렇게 고생했던 나오미가 왔단 말이야. 남편도 죽었다며, 두 아들도 세상 떠났다며, 그런데 함께 온 저 여인은 며느리라며. 정말 나오미가 왔단 말이야. 그리고 사람들이 가서 막 환영하고 기뻐하고 떠들며 함께 축하하고 환대하는 공동체입니다.

그 당시 사사시대에는 교회가 다 무너진 시대 아닙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들이 다 떠나 버렸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전부 다 명예 쫓아, 돈 쫓아 떠났죠. 그들이 두 집 살림하죠. 음란해지죠. 그래서 그들이 전부 다 떠나가고 타락하는 시대에 교회가 온전하고 정상적인 교회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베들레헴이라는 이 정상적이고 빛나는 공동체를 집중해서 조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룻 한 사람의 영웅적인 얘기가 아니라 룻을 살게 해준 베들레헴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로 한번 이것을 가져와 보세요. 오늘 우리 시대, 이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사람들은 다 어른이 없다고 말하잖아요. 정치에도 어른이 없고, 교회도 어른이 없고, 지도자가 없는 시대.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영적 지도자가 다 타락하고 다 없는 시대,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빛나고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를 하나님이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