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장 17-18절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오늘은 에스더 두 번째 시간으로 2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에스더 이야기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에스더 이야기에는 잔치가 많이 나옵니다. 에스더서의 시작부터 잔치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에서 말하는, 인간이 베푼 잔치와 지난 시간 말미에 살펴보았던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중심이 되는 잔치는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어마어마하게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국 127도의 지방관과 관리들, 대단한 사람들을 다 모아서 180일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왕후를 술 취한 자들 앞에 세우려 했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 잔치, 세상의 모든 인생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갈수록 엉망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으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 갈수록 엉망 아닙니까? 겉으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했고 남들보다 뭔가 다른 것을 이루어서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갈수록 공허하고 문제 많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 잔치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계셔도 사흘째 되던 날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사실 요한복음 2장의 그 잔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면 내 인생은 잔치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연회장이 마지막에 말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이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갈수록 더 좋아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가 이야기하는 잔치 모티브는 오늘 우리에게 굉장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볼 때 반드시 서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역사적 바탕 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 이야기를 역사와 연결 짓지 못하고, 또 시킬 생각도 잘 하지 않습니다.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동화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스더 이야기는 아하수에로 왕, 곧 크세르크세스 1세 페르시아 대왕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86년에 왕이 되고, 480년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지고, 기원전 479년 왕후를 새로 맞이하고, 그리고 기원전 465년에 죽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것이 분명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역사 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역사적 지평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 중에 현인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 아하수에로 왕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성경은 현인이라고 말했는데 진짜 현인이었습니까? 진짜 현인은 왕을 그런 식으로 내버려 두지 않겠지요. 왕의 눈치를 보고 왕의 심기를 살피고, 자신의 목숨과 부귀영화를 부지하기 위해서 간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현자, 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내 옆에, 내 주변에, 우리 공동체에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그것이 지난 1강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오늘 2강의 주제는 '에스더, 왕후가 되다'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그냥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왕후가 되고 팔자 고친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치열한 이야기이고, 그 속에 하나님 이야기가 아주 상세하게 들어있습니다. 에스더서 1장부터 10장까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와 비슷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개입과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납니까? 에스더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일하셨던 하나님의 이야기가 여기에 굉장히 깊이 있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2장 1절을 보십시오. 왕의 노여움이 그친 후에 왕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침에"
그 후는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술 깬 후입니다. 술 깬 후에 이분이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닐 때 몇 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가 왕후를 불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 앞에서 왕후의 자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후가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 즉시 역사를 아는 사람들, 전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왕후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회의하고, 그것을 결론 내고 도장을 찍어서 반포해 버렸습니다. 술이 깨기도 전에 말입니다.
술 취했을 때 했던 일 두 가지, 왕후를 불러오라 한 것과 왕후를 폐위시켜라 한 것을 일사천리로 해버렸습니다. 그 후에 술이 깼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의 노가 그쳤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무슨 말입니까?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왜 그랬지? 여러분, 술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줍니까? 술 취하면 감해 주어도 됩니까? 나 술 취하고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고, 그리고 나서 나쁜 짓하고 범죄하고 막말하고 마구 행동하면 그것 다 넘어가도 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