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특강-2 :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2장)

로마서 2장 4-5절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이를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오늘은 로마서 특강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2장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면 어떤 논문을 찾아볼 이유도 없고 어떤 연구를 깊이 있게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면 나를 보면 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를 살피면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인간의 전 존재, 욕망과 욕심과 위선과 거짓과 탐욕이 다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을 그대로 살피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평생을 살아도 자기가 자신을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얼굴 생긴 것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내 머리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거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외모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나를 정직하게 비추어 보고, 그 말씀 앞에 내 영혼을 제대로 세우고 벌거벗겨 보아야 나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2장의 큰 주제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말씀 앞에 세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가 딱딱한 껍질을 가진 굉장히 난해한 내용들이 많은데, 그 껍질을 해체하고 분리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 과정을 성실하게 잘 따라가면 그 안의 열매는 굉장히 달콤하고 귀합니다.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살리는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의 죄

1-1. 지속적으로 판단하는 자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기에 '판단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1절 끝에 보면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남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정죄하면서, "저 사람은 저런 죄를 짓고 저런 악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말해 놓고, 정작 판단하는 자기 자신이 똑같은 일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3절도 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여기서 '이런 일'이 무엇입니까? 이 대명사가 가리키는 바를 찾아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1장을 봐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할 때 하나님 진노의 심판 대상이 되는 세 가지 죄를 말했습니다. 18절을 보면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라고 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 곧 위로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자이며, 불의는 옆으로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죄를 범하는 자들입니다. 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는데 행하지 않는 것이 더 악한 자들입니다. 23절에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자, 우상숭배하는 자, 이것이 바로 '이런 일'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유대인들이 손가락질했습니다. 나쁘다고, 악하다고 무지하게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3절에 보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한 단어를 헬라어로 봐야 하는데, '판단하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크리논'(κρίνω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사형입니다. 헬라어 문법의 분사는 지속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크리노'(κρίνω)라는 말은 비난하다라는 뜻인데, 분사형으로 쓰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난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군가가 어떤 한 가지 잘못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잘못을 가지고 질책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 잘못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계속 지적질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어느 누군가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 좋은 어떤 분에게 그 모습이 딱 걸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사람을 보고 "당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예배 시간에 바르게 앉아 있어야 되고, 전화 받으면 안 되고, 문자 보내면 안 되고, 설교 말씀드릴 때 제대로 보고 있어야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도 이 사람이 제대로 설교 듣는지, 제대로 하나님 말씀 듣는지, 예배 경건하게 드리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판단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이방인들에 대해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 걸리면 그것으로 그냥 책망하고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크리논 하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판단하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 사람을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판단하려면 시선이 어디에 가 있어야 됩니까? 시선이 그 사람의 행동과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해야 됩니다. 우리 시선이 거기에 가 있다는 말은 내 마음도 거기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나는 내 신앙생활과 내 영적 생활은 뒤로 하고, 그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그 한 사람 잡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그 사람을 크리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영성에 좋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이 성장하고 자라고 신앙의 연륜이 있으면 있을수록,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크리논 하는 것은 절대로 믿음 있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