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람처럼 물처럼 e-레터를 배달하는 이야기 수집가, 훈훈입니다. 9월 24일은 기후정의 행동의 날입니다. 기후행동이 거리에 나선지 4년, 일상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우리는 부단히 많은 행동을 이어왔습니다. 그날도 우리는 절박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실천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의미있는 행동이었을까? 바람처럼 물처럼 두 번째 레터에서는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의 '기후위기 상담소' 코너를 통해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바람과 물 5호, 기후위기 고민상담소 📖전문읽기

나의 실천이 과연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 의미있는 일일까?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음직하다. 혹은, 의미 따위는 고민하지 않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당근마켓을 이용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이런 실천들이 조금씩 모여 세상이 변화하기를 바라면서. 아니, 세상의 변화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나의 삶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가 먼저 뭐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 하나만은 기억하길 바란다.

내 주변에는 기후위기 실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우리 엄마는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사지 않고, 한번 산 물건을 오래 쓰고 사치하지 않아.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녀. 나는 어렸을 때 이런 행위를 ‘친환경’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이건 그냥 엄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니까.", "친환경, ESG 경영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과 관계없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배제되어 버리곤 해" 이런 문제의식들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실천이 이윤추구를 위한 기업의 비즈니스 마케팅이거나 트렌드일지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그렇게라도 행동하는게 낫지 않을까?"

나는 종종 이런 모습을 목격한다. 종이컵보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기후위기 실천을 하지만 집안에 식기세척기는 꼭 있어야 하고, 자원을 재활용한 의미있는 제품의 가치를 소비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상품소비를 통해 해결하는 상황 말이다.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 혼란스러운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친환경'의 잣대로 바라보면 모순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자원을 얼마나 낭비하고, 탄소를 얼만큼 배출하느냐의 단순한 기준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님을 느낀다.

마침, <바람과 물> 5호, 기후위기 고민상담소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렸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후행동은 채식이다'는 생각으로 탈육식 실천을 하려 하는데, 육류소비에 따른 탄소배출량에 대한 통계가 제각각이라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탈육식을 주장하는 이들은 축산업의 탄소배출량을 18%에서 51%까지도 말하고, 국내 축산업계는 1.3%라 주장하니, 헷갈릴 만도 하다. 내게 그 질문은 채식이 기후행동에 의미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으로 읽혔다.

말콤 글래드웰은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IQ 점수는 (......)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측정하기보다는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측정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떤 도구를 이용하는지에 따라, 어떤 대상들을 '평균'으로 정하는지에 따라 통계 결과와 진실이 변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어떤 '중요한' 숫자들은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거나 사기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육류 소비에 따른 탄소배출량은 어느 쪽에 속할까요?

숫자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논거를 숫자에서 찾는다. 출산률,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등. 간혹 신문기사에서 이 기사를 마주할 때면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뎌지지도 한다. 숫자는 많은 것을 말하지만 아무 것도 전해주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숫자는 의도와 측정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