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본문: 누가복음 1장 5-8절

일본 사람들은 꽃 중의 최고를 벚꽃이라 하고, 사람 중의 최고를 무사라고 말합니다. 벚꽃과 무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그 화려함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피었다가 금세 사그라집니다. 벚꽃도 그렇고 무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무사도 늘 두려움에 떨며 가슴 속에 칼을 품고 다닙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자, 나보다 실력 있는 자가 나를 죽이려 달려들면 맞서 싸우려고 칼을 품고 다니지만, 그 칼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처럼 불안한 인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무사들은 마치 벚꽃과 같은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벚꽃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그는 수천 명의 영주를 나라현 요시노산에 모아놓고 벚꽃 잔치를 벌였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잔치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칭송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598년, 늘그막에 얻은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는 다시 한번 벚꽃 잔치를 엽니다. 그 잔치를 위해 벚나무 700그루를 심고 큰 행사를 준비하여 자신의 권위와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잔치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잔치 이후 두 달 만에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가문도 멸문의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가문의 위세와 그의 세력이 잔치 이후 두 달 만에, 가문은 1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마치 벚꽃처럼 한순간 사라져 버렸습니다.

벚꽃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무척 빠르게 변합니다. 무언가 생겨났다 싶으면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인간의 부귀영화와 권세에 대해 옛사람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입니다. 권세가 영원할 것 같고, 부귀영화와 물질도 영원히 내 것일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변하고 빠르게 흘러가며 사라져 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오늘 읽은 말씀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야 할 바, 서 있어야 할 곳을 알려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한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사가랴, 아내의 이름은 엘리사벳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은 총 24반열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비야 반열은 그중 여덟 번째 반열이었습니다. 1년에 두 번, 들어갈 때마다 일주일씩, 1년에 2주씩 각 반열의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제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런 일을 감당하는 사가랴가 제사장 가문의 일원으로서 그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 엘리사벳의 족보를 올라가 보면, 그 조상이 대제사장 아론이었습니다.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 하나님께서 초대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부부는 뿌리 깊은 제사장 가문이었고, 당시로서는 대단한 지식인 집안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부모로부터 유대인에게 속한 교육과 제사장으로서의 엄격한 신앙 훈련을 제대로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수천 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배웠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이 살던 시절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라고 말합니다.

1. 암울한 시대적 상황

사실 이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당시 유대 땅을 다스리던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는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고,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정책은 이중적이었습니다. 첫째, 전략적 요충지는 직접 통치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싶으면 핵심 인물들을 파견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직접 통치했습니다. 반면 전략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위탁 통치를 했습니다. 기원전 40년, 로마 동쪽 지역을 통치하던 안토니우스 장군은 에돔 사람 헤롯에게 팔레스타인 유대 땅의 지배권을 넘겨주었습니다.

로마가 판단할 때 팔레스타인 유대 땅은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에돔 사람 헤롯은 그 지역의 지배권을 로마로부터 가져오면서 엄청난 금액을 바쳤을 것입니다. 거래 없이는 그 땅을 위탁받아 통치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군대를 주둔시킬 권한을 함부로 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 두 분이 살던 시절의 유대 땅은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지배권 행사는 에돔 사람 헤롯 가문이 붙잡고 통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습니다.

1-1. 에돔과의 역사적 악연

차라리 로마가 직접 통치하면 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로마가 아닌 에돔 사람이 그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적 악연 때문입니다. 에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삭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쌍둥이 형제를 낳습니다. 장자권이 야곱에게 넘어갑니다. 그러자 화가 난 에서가 집을 박차고 나갑니다. 에서는 남쪽 세일 산에 가서 자기 가정을 형성하고 뿌리를 내려 가문을 넓혀 갑니다.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민족이 에돔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이가 좋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 에서가 장자권을 빼앗겼다, 만약 우리 조상 에서에게 장자권이 넘어왔더라면 우리는 이 황량한 산악 지역에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그런 피해의식을 품고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뜨릴까 수천 년 동안 벼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 수천 년이 흐른 후, 드디어 그들의 염원이 실현됩니다. 에돔 사람 헤롯이 유대인들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수치스럽고 굴욕스럽고 분한 상황이었겠습니까? 그런데 힘은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의 실질적 지배를 막아낼 어떤 방법도 유대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1-2. 헤롯의 교활한 통치

그런데 일반 시민들, 평민들은 별 고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굉장히 영악하고 교활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종교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성전을 지어줍니다. 볼품없는 성전이 아니라 대단하고 위대하고 화려한 성전을 지어줍니다. 이른바 헤롯 성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속 모르고 헤롯 성전을 좋아했습니다. 그 헤롯 성전의 위엄이 어떠한지 사람들은 저마다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예수님께도 어떤 사람이 와서 헤롯 성전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5-6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사람들은 헤롯 성전을 자랑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졌습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돌들과 헌물로 지어졌습니까 하고 예수님께조차 자랑했습니다.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이 성전이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이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는, 역사를 아는 사람들, 배운 사람들, 제사장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력했겠습니까?

정치적으로 힘이 없어서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종교적으로도 저 사악한 헤롯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백성들을 보는 제사장 가문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사실 그들은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시대는 더욱더 악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절을 살고 있었습니다. 암울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다

그렇다면 이런 시절에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무엇을 하며 버티고 어떻게 견뎌내야 했겠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하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살았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은 시대의 아픔 앞에서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그것 때문에 자기 인생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님 앞에 계명과 규례를 지키며 흠 없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너는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특별한 행위를 행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시대적 절망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저 신앙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르시는 방식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의롭다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