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4일,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성당 | 예수회 한국관구장 김용수 빠스칼,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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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종들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4월 21일,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라는 이름으로 1936년에 태어나신 교황님께서는, 1958년 3월 11일에 예수회에 입회 후, 1969년 12월 13일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1973년에는 최종 서원을 하신 뒤, 같은 해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의 관구장 소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1992년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1998년에는 같은 교구의 교구장이 되셨으며, 2001년 2월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셨습니다. 그리고 2013년 3 월 13일에, 76세의 연세로 교황으로 선출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처음으로 방문하신 아시아 국가는 바로 한국입니다. 4박 5일이라는 짧고도 바쁜 일정이었음에도, 이곳 서강대학교 예수회 공동체를 찾아주셨습니다. 지금은 예수회 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교황님의 친필 방명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한국의 예수회 공동체의 내 형제들에게, 환대에 감사하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하며, 형제되어” 교황님은 우리 모두를 형제로 부르셨고, 진심을 담아 형제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에 게 교황님은 친근한 형제일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인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신 지혜로우면서도 따뜻한 스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미사 중에,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신 이 분을 기억합니다.

제가 예수회원으로서 바라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회를 설립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인이 보여준 삶의 모범을 따라, 선종하시는 그날까지 예수님과 깊이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신 분이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전에 묻히시길 원하셨습니다. 이 성전에는 교황님께서 좋아하신 “로마인들의 구원”이라는 제목의 성 모 성화가 모셔져 있기도 하지만, 이냐시오 성인이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첫미사를 봉헌한 성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이냐시오 성인은 사제 서품 후에 예수님과 더욱 깊이 일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수님의 생애의 핵심 장소였던 예루살렘에서 첫미사를 봉헌하길 원했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알려진 구유가 모셔져 있는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전에서 첫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이냐시오 성인의 이 마음을 본받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황님께서는 특히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을 당신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충실히 살아내시며,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신 분이셨습니다. 영신수련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수행하신 위로의 사명을 기도하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이 위로의 사명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도한 제자들은 어쩌면 자신들에게도 예수님과 같은 상황이 닥쳐올까 두려워서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두려움의 한 가운데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전하시는 평화의 인사를 들으며, 제자들은 ‘너무 기뻐했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교황님께서도 또한 가시는 곳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사명을 수행하시며 그분들께 기쁨을 전해주셨습니다. 2014년도에, 교황님께서 예수회 서강대 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 당시 모였던 100여명의 예수회원들이 한 목소리로 viva papa 를 외치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교황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사람을 따뜻이 안아주시며, 우리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교황님께로부터 매우 깊은 위로를 받은 기억 또한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황님께서는 40여분간의 예수회 공동체 방문을 마치시고 떠나시며, 구약 성경의 이사야서 40 장 1절에서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 즉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제들은 성직자이기 이전에 양 냄새가 나는 사목자로서 상처 받은 많은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방한중에 실제로도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 위로의 사명을 수행하셨습니다. “인간의 고통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씀하시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분들등을 만나 그분들의 마음을 경청하며 그분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모습은 영신수련을 통해 깊이 만난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살아내신 결과였습니다. 수도자는 청빈 서원을 하기 때문에 사유 재산을 가질 수 없지만, 수도자라도 주교가 되면 그 서원에서 면제되어 사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선종 후에 남은 재산이 100 달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가난을 어머니로 모시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불의한 사회 경제 구조를 꾸짖고, 가난한 이들에게 배우고 싶어하셨던 교황님은 예수회 입회 후 첫서원을 할 때의 청빈 서원을 선종 하실 때까지 충실히 지키며 살아오셨던 것입니다.

2022년 6월 29일에 -교황님의 사목 표어이기도 한- “자비로이 부르시니”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교황님의 유언은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선종 후에도 따르고자 하신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덤은 지면 아래 있어야 하며,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없이 Franciscus 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겸손한 모습은 교황으로 선출된 첫 순간,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분들에게 축복을 주시기에 앞서 건네신 말씀과 행동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신자분들께서 당신에게 먼저 축복을 해달라고 말씀하시며, 허리를 숙이고 신자분들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교황님께서 예수회 서강 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에는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 건장한 체격이신지라 비교적 큰 의자를 준비했었는데, 교황님 수행원이 “교황님께서는 커다란 의자는 원치 않으신다고 하셔서, 지금은 예수회 센터 3층에 전시되어 있는 작은 의자를 급하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시무룩한 표정으로는 예수님을 선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교황님은 그 작은 의자를 맑은 미소로 보시며 좋아라 하고 앉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과 겸손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매우 약합니다. 그러기에 상처받기 매우 쉬운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함은 세상의 강함보다 더 강해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약함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교황님 또한 이를 본받아 가난하고 겸손한 삶, 바로 이 하느님의 약함의 가치를 살아가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증언하셨고,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복음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 또한 이 위로와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라는 메시지를 당신의 삶으로 남기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위해, missionary spirit 즉 선교사 정신을 갖고 살아갈 것을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님께서는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후에 교회의 보수적인 분들 사이에서는 사제가 없는 북한 방문을 반대하 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사 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야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교황님의 방북 계획을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셨다고 합니다.

변방으로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말씀해 오신 교황님께서는 같은 사안을 보면서도, 안된다고 하기 보다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뚫고 복음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아직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 전 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교황님이 보여주신 이런 모습이 바로 선교사 정신을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2025년 4월 20일에 우리 모두에게 부활절 축복을 주신 후, 그 다음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위로와 기쁨의 사명을 몸소 살아내셨던 교황님께서, “이제 다 이루었다”고 스스로에게 말씀하시며 ‘자비로이 교황님을 부르신’ 하느님을 향한 당신의 마지막 여정을 조용히 준비하신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님께서는 취임때부터, 재임 기간 내내, 주일 삼종 기도를 비롯한 모든 연설을 마치실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도 오늘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 품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