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이 되는 것, 손에 닿는 것, 눈에 보이는 것, 확실한 것
백창기의 삶이 뒤집히며 추구한 것들이었다. 돈과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횡무지 가운데 쌓아올린 시체 위에서 두려움이라는 세포 하나 없이 군림하는 황제. 필리핀에 정착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퍽 안정적이었던 곳은 장동철의 말썽 하나로 얌전히 우리를 지키던 사자를 건드렸다. 새로운 업장이 나올 때를 제외하면 사무실에서 시간을 떼우던 백창기와 조지훈이 더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소영은 백창기의 눈에서 몇 번의 기회가 장동철에게 주어졌는지 계산했다. 아마 백창기가 한국 가기 전부터 장동철은 언젠가 사장님의 손에 죽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곤 했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간만에 사무실로 들어온 백창기의 뒤를 쫓으며 지소영은 사무실의 흐름을 쉽게 설명했다. 확장 업무 이 후의 기반을 단단히 하며 한참 일을 하고 나면 다시 함께 퇴근을 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해가 떴다. 차를 운전 하는 내내 조수석에서 일정을 읊는 지소영을 듣고서 사무실에 도착하면 지소영이 준비해둔 보고서들과 결제 서류들을 보고 사인한 뒤 하루 네 번 시간을 맞춰 오는 아이스크림 차에 종종 함께 나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가끔 다른 아이스크림을 고르면 놀래는 지소영과, 늘 함께 사는 조 부장과 제이슨의 몫까지 계산을 하면 그들이 있는 서버실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전달했다. 그리고 또 외근을 나가거나 카지노 감독을 한 번 하면 일터에서 하루의 일정은 끝인 셈이었다. 이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라던지, 집에서도 종알거리는 사람이 있으며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청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그저 그런 것 뿐이라고, 백창기는 생각했을 뿐이었다. 항상 시선 끝에 닿아있어야만 안도감이 드는 탓에 소파 바로 앞자리에 놓아준 책상, 그리고 함께 자는 방에 백창기는 알맞는 사유를 주지 못했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처음으로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행동으로 옮겼다. 백창기는 손 끝에 쥐어진 위스키잔을 한 번 빙글, 돌렸다. 달그락, 하고 얼음이 잔을 부딪히는 소리에 가만히 생각하는 듯 시선을 들어 눈에 닿는 지소영을 바라보았다. 일순 속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그리고서는 핸드폰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여 캘린더를 켜보았다. 더 이상은 안된다. 더 무언가를 품어내다가 결국 빛이 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강도 사건을 겪고, 지소영 또한 안정이 되었음에도 그녀를 여전히 품에 안고 자는 것은 욕심이었다. 책상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잊고 산지 오래 되었던 세포들이 다시 피어나니 생각 없이 결정하는 일들이 많아졌었다. 그저 온기만을 나누던 것도, 계속 되는 욕심일 뿐이었으나 그 욕심 앞에서 백창기는 그저 눈을 감고 함구했다. 하지만 애써 모른 척한 감정은 어느 순간 터지기 마련이었다. 백창기의 욕심은 지소영을 단순히 어느 날 지소영을 앞세워 그린 행복이 아닌 지소영 자체를 손에 넣고 싶은 감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지배욕과 정복욕, 맹수의 본능이었고 금수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의 이유가 되었다. 이 후 백창기는 생각을 재정립했다. 깨어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지소영이 없어야했고, 또한 지소영이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까지 더 이상 이 세계에 발을 두어선 안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품에서 그 빛을 잃는 눈을 지켜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그 것이 백창기의 욕심이었다.
“지훈아.” ”예,” ”한국 들어가자. 하나는 편도로.”
조지훈은 구태여 그의 말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그 때구나, 싶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조지훈이 곧바로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지소영의 이름으로 연 계좌에 돈을 두둑히 넣어두었다. 백창기는 소파에 앉아 창고 내를 돌아다니며 상태 확인을 하는 지소영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어디서든 살아날 밧줄만 있다면 지소영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상실과 필리핀을 견딘 인물이었다. 이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 지소영이 스스로 해쳐나가야하는 문제라며 치부했다. 저 빛은 여기 있어선 안된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갑자기 한국이요? 왜요? 서버 확장된지 얼마 안됐는데… 새 창고도 알아봐야해요.” ”가서 동태를 좀 보고. 확장만 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 ”서버가 조금 불안한데…” ”셋이서만 갈 거니까, 여기는 제이슨한테 둬.” ”일단은 뭐, 알겠어요. 일정이랑 여권들 주세요.” ”그건 내가 다 했으니까 짐만 챙겨.”
지소영은 의외로 순순했다. 지소영을 바라보는 조지훈의 눈빛에서 묘한 감각이 일었지만 알 수 없는 답에 그저 가벼이 어깨를 으쓱이고서는 흘려넘겼다.
출국날, 셋은 공항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 없었으나 묘하게 백창기와 조지훈의 반응이 이상했다는 것 뿐이었다. 무어라 재잘거려도 간간히 들려오던 답이 없어 침묵 속에 공항으로 향했다. 티켓 발권을 하고 비행기를 오를 때까지 지소영은 그저 묵묵히 둘의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이상한 점은 비행기 탑승 후 부터 느껴졌다. 그저 눈을 감고만 있는 백창기. 그리고 어디에 앉아있는지도 모르는 조지훈. 알 수 없는 답은 여전했지만 묘한 감각의 선명도는 더욱 짙어졌다. 백창기는 함께 오른 비행 내내 부러 옆자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두 눈을 꾹 감고, 다섯시간을 견뎠다.
앞으로 3일, 지소영에게 마지막을 내어줄 것이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에게 준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