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메인 스토리라인
※ 서사 중심, 시간순 진행
고등학교 입학식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겠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던 세라는 지금,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이건 세라가 길치라거나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는 아닌 듯 했다. 분명 이쪽이 맞는 길일 터인데, 정신을 차려 보면 아까 걷고 있던 그 자리였다. 마치 시공간이 꼬인 듯한,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세라는 시간을 생각했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학교에 응당 걸려있을 시계가 있는 위치로 갈 수도 없었다. 애초에 시계를 본다 한들, 그게 맞는 시간일지 확신이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시공간이 꼬인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헤매게 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 시간? 그보다는 조금 덜 됐을까? 배정받은 새 학급의 조례가 이미 끝났으면 어쩌지? 세라가 초조해 할 수록 복도도 어지럽게 꼬여가는 듯 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세라는 힘이 쭉 빠져 쭈그려 앉았다.
“길, 못 찾았어?”
그때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고개를 드니, 그곳에는 분홍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똑같이 오늘 개시했을 터인 교복 - 오늘은 입학식 날이라, 신입생 외의 학생이 여기 있을 리 없었다 - 이 평생 입어온 것처럼 잘 어울리는, 단정하고 우아하며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소녀였다. 소녀는 세라와 쏙 닮은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세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세라가 손을 잡자, 망설임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대로 소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기는 어디야? 왜 아무도 없는 거야? 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거야? 네 이름은 뭐야? 세라의 이어지는 질문 공세에도, 분홍 머리의 소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세라를 끌고 가는 이 소녀가 웃고 있다는 것만이 느껴졌다.
소녀와 함께 복도 끝의 빛으로 뛰어들자, 어느새 세라는 배정받은 학급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소녀는 세라가 가려고 한 곳으로 인도해 준 것이었다. 고마워, 라고 말하며 옆을 봤으나 그곳에 있어야 할 소녀는 환상처럼 사라져 있었다. 방금 일은 꿈이었나? 혼란으로 약간 지끈거리는 머리를 추스리고, 세라는 반에 들어갔다.
시간은 5분밖에 지나지 않은 채였다. 말도 안 돼, 세라는 허탈한 숨을 몰아쉬었다. 그보다도, 반에는 아까의 분홍 머리 소녀가 있었다. 마침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었던 걸까.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일어난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안나입니다.”
안나는 묘하게 고고한 분위기를 띈 아이였다. 늘 단정하고 감정적으로 구는 일 없이 말투가 차분하지만, 어딘가 또래와 다르다는 미묘한 이질감을 지닌 아이. 얌전하고 조용하지만, 시선이나 대답이 때때로 이계(異系) 에 있는 듯 했다. 질문에 맥락 없이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한참 생각한 후에야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 안나가 친밀하게 구는 대상은 오직 세라였다. 분명 학기 초고 첫 만남일텐데, 안나는 세라에게 처음부터 큰 관심을 보였다. 세라가 어디를 갈 때마다 안나는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수업 중이고 쉬는 시간이고 할 것 없이 세라를 빤히 바라보며, 볼을 찌르거나 알 수 없는 농담을 하는 등 장난을 걸었다. 가끔 세라에 대해 잘 알고 다는 듯한 안나의 눈빛에, 세라는 안나가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딘가 쎄하고 불편하지만, 동시에 안나에 대해 알 수 없는 운명적 끌림을 느꼈다. 한 마디로 눈을 뗄 수 없는 아이였다.
한편, 안나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언제나 단정한 모습은 부잣집 딸이기 때문이고, 다른 아이들이 아는 상식을 모르는 것은 귀엽게 보이기 위한 컨셉이고, 어딘가 또래와 다르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오만한 태도. 그런 식의 부정적인 와해가 돌고 있지만,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