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3월 이상한 일을 겪은 후 영국으로 돌아온 오닉스는 탐사대에 관한 기사 집필을 포기했습니다. 성과 없이 돌아온 아들을 엄히 꾸짖은 아버지는 1921년 7월, 오닉스를 강제로 터키 독립전쟁 취재 특파원으로 보냈습니다. (터키 독립전쟁은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멸망 후 연합국이 제국을 분리하며 점령하는 데에 반발한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정치 및 군사적 저항으로 발발한 독립전쟁. 협상국은 그리스 왕국, 프랑스, 영국, 아르메니아 민주 공화국이 주축.)
그는 참전한 영국군과 함께 지내며 아버지의 후광 덕택에 원치 않는 편안한 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총알과 폭탄이 오가는 전시상황에서는 다른 군인들과 동등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막사에서 잠을 자던 중 아찔한 급습을 겪은 이후로 오닉스는 군대에서 총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오닉스는 일평생 아버지가 이야기하던 군인의 명예와 용맹스러움이 전쟁의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고, 원치 않게 참전한 군인들의 이야기와 전쟁의 참상을 보고 듣고 겪으며 전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오닉스가 영국으로 보낸 원고는 영국의 명예와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급급한 신문사의 개입으로 대거 수정되었습니다.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록은 지극히 줄어들고, 죽음 앞에서 용맹스럽게 목숨을 바치는 영국군의 미담만이 과장되어 영국에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지금까지 저널리스트로서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 오닉스의 가치관에 큰 전환점을 주었습니다.
종군 기자는 전쟁에 뛰어들지 않고 그저 관찰자로서 눈앞의 풍경을 관망해야 한다던 선배의 조언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오닉스는 자신이 서 있는 전쟁의 불의와 일반인들의 비애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머물 당시 그는 전쟁의 폭격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젊은 청년 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오닉스는 ‘종군 기자는 전쟁을 관망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형제에게 남몰래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형제가 지내는 마을에 게릴라전이 벌어졌고, 오닉스는 대대가 바쁜 틈을 틈타 형제가 머무는 무너진 은신처로 향했습니다. 그는 버려진 총을 집어들고 형제를 피신시키려고 했지만 곧 무장한 군인을 마주쳤습니다. 오닉스가 망설이는 사이 전쟁의 광기와 야만에 절여진 군인은 형제 중 나이가 어린 동생에게 총을 쐈습니다. 오닉스가 반사적으로 군인에게 총을 쏜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소년과 군인 모두 숨이 끊어져 있었고 곧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오닉스의 뺨과 한쪽 팔에 난 긁힌 상처는 이때 튄 수류탄 파편으로 인해 생긴 부상입니다. 폭발에 휘말린 오닉스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운 좋게 영국군에 의해 발견된 그는 급히 부대로 실려 와 응급처치를 받았고, 곧 영국으로의 귀환이 결정되었습니다. 그의 귀환 또한 아버지의 지시였으며 오닉스는 자신의 무력함에 괴로워하며 오랜 회복기를 가졌습니다. 아나톨리아에서 만났던 형제 중 나이가 많았던 형이 그 이후로 생존했는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전쟁과 식민 지배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던 오닉스는 몸을 회복한 이후 집을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데일리 미러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양한 분쟁 지역과 식민 지배를 받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프리랜서로서 취재를 했고, 이따금 시간이 남을 때는 소설을 썼습니다. 이때부터 한없이 이상적이고 서정적이던 제인 마리니의 작품에서는 현 세태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드러납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하는 지금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영국에서 지낼 때보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큼은 그때보다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전쟁터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일은 평생의 죄로 남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멋 모르던 어릴 때보다 많이 차분해졌으며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전보다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제는 가까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며, 무력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였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터키로 떠나기 전 아서 해리슨에게 남긴 편지
<aside> ✔️ 친애하는 아서 해리슨 씨께
안녕하세요, 아서 씨. 오닉스 테일러입니다. 저는 조만간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취재하러 영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아델 씨와 케일리 씨, 그리고 잭슨 씨랑 달리 함께 런던에서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간간이 아서 씨를 뵐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만, 전쟁이 지속되는 당분간은 이전처럼 만나 뵙기 어려울 것 같아요. 편지는 주고받는 데에 시일이 오래 걸리겠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부끄럽게도 제 아버지께서 군에 열정을 바치고 계시는 만큼 제게 돌아오는 혜택이 없지 않으니까요. 기존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주시면 제가 전쟁터에서 지낼 때도 아서 씨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 페루 탐사대에 참가했을 때 저희가 에스파냐 호텔에서 발견했던 황금 가면을 기억하시죠? 가면은 멘도사와 같은 사람(어쩌면 괴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제가 영국을 떠날 예정이라,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면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아시겠지만 페루에서 있었던 그런 끔찍한 일이 영국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되겠죠. 케일리 씨도, 아델 씨도, 그리고 잭슨 씨도 저희와 달리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생활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물건을 제가 맡길 수 있는, 제가 신뢰하는 분은 당장으로서는 아서 씨만이 떠오르네요. 제가 영국을 떠나 있는 동안 이 물건을 아서 씨께서 맡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가능하시다면 이른 시일 내에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닉스 테일러
</aside>
군에서 지내던 시절 아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
<aside> ✔️ 친애하는 칼리아 편집장님
오랜만에 편지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간 안녕히 지내고 계셨나요? 이곳에 도착하는 영국의 소식은 현지에서보다 한참 느려서, 편집장님이 이 글을 읽으시는 순간의 영국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내는 이곳 아나톨리아 지역은 순간순간 전세가 뒤바뀌기도 하지만 저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언제나 같습니다. 콩을 볶는 소리 같은 총소리와 수류탄의 굉음은 여러 번 들어도 익숙해질 낌새가 보이질 않네요. 저와 같은 기자가 아닌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저와 달리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나서는 이들이니 두려움은 더 크겠지요(물론 저 또한 전쟁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가 나고 자라며 아버지에게 들었던 전쟁의 이야기는 정말로 허황된 일화일 뿐이었음을 더욱 선명히 자각하게 됩니다. 높으신 자리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호화로운 천막에 계시지, 부상병들이 신음을 흘리는 천막에 계시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는 그저 화려한 승리만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지휘에 도취된 채 저에게 좋은 이야기만 하셨겠지요. 게다가 아버지는 저 또한 군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겪은 전쟁이란 참혹함이 전부입니다. 영국 시민들이 세계를 주름잡는 영국군을 우러러보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저보다도 어린 일반 병사들은 그저 그들에게 내일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의무관이 지내는 천막에는 부상병들이 넘치고, 날이 추우면 동상으로 썩어들어간 발을 군화에 집어넣고 행군하기 일쑤죠. 거리의 수레에는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여름에는 그곳에서 참기 어려운 악취가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저 또한 편한 옷을 갖춰 입고 잠자리에 들어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언제 어느 때 수류탄이 날아올지 몰라 항상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타자기를 옆에 둔 채 잠이 들곤 합니다. 고생하는 병사들과 아무 죄 없이 고통받는 민간인들을 볼 때마다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회의감이 듭니다. 결국 이 전쟁이 끝나면 역사에 기억되는 이름들은 제 아버지와 같은 높으신 분들이겠죠. 데일리 미러에 실린 제 기사를 보셨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어쩌면 편집장님 정도 되는 분이면 그 글이 제 평소의 생각과는 대치된다는 걸 금방 알아보셨겠어요. 나름 열심히 발로 뛰며 전쟁의 현장을 기록하고 원고를 보냈는데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신문사와 이곳에 계시는 사령관님에게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 ‘넌 대체 누구 편이냐’ 라면서요. 기자가 반드시 누군가의 ‘편’이어야 할까요? 오히려 기자이기에 최대한 공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제 활동이 탐탁지 않은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군인들의 고충과 일반인의 희생을 알리는 일이 저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요. 저는 제국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사상 간의 대립과 명예, 이권 다툼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서 고통받는,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눈에 걸릴 뿐이에요. 20대도 되지 않아 군에 입대해 다리를 잃어버린 사병이나, 시체 수레에 실린 무고한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든 그러지 않을까요? 전쟁이란 프레임 씌우기의 싸움이라고 하죠. 저는, 적어도 저만큼은 영광스럽지 못한 끔찍한 전쟁의 풍경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만에 하나 제 기사를 보시고 오해가 생기셨다면 이 글을 읽으시고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기작은 틈틈이 쓰고 있습니다. 비록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는 곳이 이곳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제인 마리니’의 소설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이 전쟁을 버티기 어려울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전쟁에 참여해 용기를 얻고 생각을 바꾸기를 원하셨던 것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지기만 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누군가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셨겠죠? 저의 형제 체스터도 마찬가지겠죠. 체스터도 아버지의 입김으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할지 불안해지곤 합니다. 체스터도 아버지처럼 전쟁을 단순히 명예롭게 생각할까 봐요. 제대로 된 연락을 하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으니 제가 알 길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체스터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편지를 써놓고 보니 내용이 전부 제 상황에 대한 불평인 것 같아 부끄럽네요. 편집장님께서 늘 저를 배려해주시고 생각해주셔서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제인 마리니가 사실은 오닉스 테일러라는 사실도 편집장님만 알고 계신 사실이니까요. 방금 이동 명령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궁금해하셨던 이곳의 사진도 함께 보내드립니다만,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조심히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PS. 먼젓번에 보내주신 소설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잠자는 사이 수류탄이 터질 때 급하게 챙기는 바람에 표지가 훼손되긴 했지만 읽는 데 지장이 없다면 문제없겠죠. 감사합니다.
오닉스 테일러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