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배경은 망망대해 위의 작은 포경선 피쿼드호입니다. 이 배를 이끄는 선장 에이허브는 남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과거에 흰머리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는 오직 흰머리고래만을 쫓아다닙니다. 그 고래를 잡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인생 전부인 것처럼 여겼습니다. 대서양을 돌아다니고,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다시 태평양으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흰머리고래를 사냥합니다. 그 과정에서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선원들까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지경이었습니다.
에이허브는 자기중심적이고 막무가내이며 광기 어린 집착을 보입니다. 하지만 배에는 그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1등 항해사 스타벅입니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선원들의 권익을 대변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의 욕심 때문에 우리 선원들 전부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뜯어 말리고, 때로는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이허브는 막무가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흰머리고래를 발견하고 작살을 쏩니다. 작살에 맞은 흰머리고래가 거대한 힘으로 배를 들이받습니다. 작은 배는 뒤집히고 선원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수장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선장 에이허브와 1등 항해사 스타벅, 이 두 사람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도 항상 존재하는 두 세력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기와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마음이 따뜻하고 공동체를 위하는 스타벅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 본문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는지 우리의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삶의 방향과 의무와 의미는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도 나오고 사람의 딸들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말씀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이며 사람의 딸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4장 후반부에 나오는 족보와 5장에 나오는 족보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4장 후반부에는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가인은 살인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되는 회개 요구도 걷어찹니다. 에덴 동쪽 놋 땅으로 떠나서 거기에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자손을 낳습니다.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신앙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가인의 자손 중에 라멕이라는 사람이 태어나는데, 라멕은 참으로 특별한 기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공동체의 모든 질서를 다 파괴했습니다.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자신의 작은 상처 때문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라멕은 또한 문명의 이기를 발전시켰습니다. 라멕의 자손들은 수금과 퉁소를 즐깁니다. 각종 기구로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이 바로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을 정리하는 핵심 단어는 '강함'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 예배 없이 말씀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의 강함을 강조합니다. 강함을 드러내려 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며 그 강함은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이 된다고 그들은 끊임없이 내세웁니다. 성경은 이런 가인의 후손을 '사람의 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계보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을 주셨는데, 하나는 세상을 일찍 떠나고 하나는 하나님 앞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셋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셋을 하나님 앞에서 잘 길렀습니다. 믿음으로 양육했습니다. 그가 자라서 결혼합니다.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자녀를 낳아서 에노스라고 이름 짓습니다. 에노스는 '연약함'이라는 뜻입니다. 약해서 연약함이라고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인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셋의 신앙 고백이 아들의 이름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 고백대로 에노스는 신앙 공동체와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 때부터 예배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담의 계보는 예배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아담의 계보에 속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려면 300년을 자기 부인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는 그 생활을 그는 300년 동안 이어갔습니다. '낳고 살고 죽었더라'의 삶을 에녹은 믿음 안에서 잘 이루어간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아담의 자손이고, 성경은 그 아담의 예배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극단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배 공동체를 잘 지키며 믿음 생활을 성실히 해가며 가인의 후손들을 예배 공동체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과 의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 사명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렇게 살았느냐. 그렇지 못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기에 동사가 세 개 나오는데, '보다', '좋아하다', '삼다'입니다.
'보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라아'(רָאָה)인데, 이것은 그냥 스쳐보거나 마음을 두지 않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마음을 담아서 면밀히 살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면밀하게 살폈습니다. 보는 것이 이렇게 되니까 그들이 그것을 보고 그다음 좋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