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가운데 「이기적인 거인」이라는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거인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이 책 한 권쯤은 있을 것입니다.
거인이 오랜 기간 친구네 집에 머물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자신의 정원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들어와서 어지럽히고 뛰어놀아서 거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 내쫓습니다. 그리고 울타리를 높이 칩니다. 표지판도 세웠습니다. 출입 금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정원 바깥에는 봄이 왔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데, 거인의 정원에는 봄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거인은 궁금했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거인이 정원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반가워서 뛰어나가 보았습니다. 조그마한 틈으로 아이들이 기어 들어왔고, 아이들이 그 정원에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새들이 따라 들어왔고, 새들이 앉는 곳마다 아이들이 손대는 나무마다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고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놀랍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정원 저 구석에 있는 한 그루 나무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지 않았고 새들이 거기에 앉지 않습니다. 거인이 가까이 가보았더니 어린아이 하나가 그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습니다. "너는 여기서 왜 울고 있니?" 하고 물어보니까 아이가 대답합니다. "제가 키가 작아서 나무에 손이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인이 아이를 번쩍 안아서 나무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무에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나무에도 봄이 온 것입니다. 그 아이는 거인의 뺨에 입을 맞추어 주며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때부터 거인은 울타리를 다 치워버렸습니다. 담장을 다 부숩니다. 표지판도 뽑아냅니다. 아이들이 와서 마음껏 뛰어놀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거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거인이 안아서 올려주었던 그 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그 어린아이 보지 못했니?" 아이들은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났습니다. 거인은 늙었고 병이 들었고 한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그 겨울에 거인은 봄을 기다리며 자기 방에 누워 있습니다. 새소리가 납니다. 나가보니까 한 그루 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반가워서 가까이 가보니 그때 그 어린아이가 반갑게 웃고 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손에도 상처, 발에도 상처가 났습니다. 거인이 화가 났습니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내가 가서 혼내주마." 그때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상처입니다. 아저씨가 나를 당신의 정원으로 인도해 주셨으니, 이제 제가 당신을 나의 정원으로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나의 정원은 바로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그리스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 그 어린아이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동화에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고립과 단절은 결코 우리 마음에 봄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소통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열고 생각을 나눌 때, 우리 영혼에도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아름다운 봄이 곧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이렇게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하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우리 인생에는 찬란한 꽃이 피고 새들이 속삭이고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광풍 이는 바다를 지나오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제자들이 그곳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고백하고, 이제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건너왔습니다. 광풍을 지나니 제자들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광인이었습니다. 미치광이였습니다. 광풍을 지나서 이제 좀 편안하게 육지에 도달했나 했더니, 무서운 사람이 제자들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광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3절입니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무덤 사이에 거처한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에 거처하지 않습니까? 주변에 집도 있고 공동체도 이루는 그곳에 거처하는데, 이 사람은 마을에 거처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 사이에 거처하고 있었습니다.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공동체와 유리되고 격리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를 해치는 사람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말할 것도 없이 이 사람은 미치광이, 광인입니다. 돌로 자기를 자해하고 있는 사람을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분명히 미치광이지만, 우리와 정말 다른 사람입니까?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이런 사람의 한 부류일 수 있습니다. 공동체와 하나 되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동체로 함께 살게 하셨는데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걷는 사람, 스스로 분리의 길을 걷는 사람이 바로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며 결국 그 마지막은 자신을 해치게 하고, 스스로 고립되어서 절망하고 낙심하다가 자기 자신이 자신의 발목을 찍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공동체 안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정을 이루어 주셨지 않습니까?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 혼자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서로 만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토로하고, 힘든 것을 위로받고 살도록 하나님이 교회를 주셨습니다. 시편 133편 1절에 보면 교회 공동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연합과 동거, 교회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학벌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지향하는 정치적 색깔과 목적이 다른 사람들,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모여서 함께 연합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함께 동역하고 동거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탄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가급적이면 분리시키려고 하고, 가급적이면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들이 모이면 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습니까? 둘 이상의 성도들이 모이면 어떤 일을 합니까? 당신의 기도 제목을 듣고 내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 함께 기도합니다. 성도들이 모이면 함께 찬양합니다. 모이면 찬양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하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삶을 나누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과 갈등들을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사탄이 좋아하겠습니까? 절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하나가 되고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을 가급적이면 깨뜨리려고 합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보도를 보면 1인 가구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1인 가구가 많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1인 가구가 많아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혼자서도 나는 신앙생활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교제 없이도 나눔 없이도 혼자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함께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사소한 문제를 파고듭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떠나갑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로 자신의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지 않는 악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도 나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그의 마지막 결과는 사망이요, 멸망이요, 패망이었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한 결말인지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여기 이 거라사의 광인도 사람들이 사는 곳을 떠나서 무덤 사이에 거처하고 있고, 결국 스스로 자기의 몸을 해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