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계보 (창5:1-32)

덴마크의 인상주의 화가 아나 앙케르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언덕이요, 힘들고 마음이 상할 때 피할 수 있는 넓은 그늘이었습니다. 앙케르는 덴마크 최북단 어촌 마을에서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여관을 운영하며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기에 여섯 자녀를 키우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내딸 앙케르에게서 미술에 대한 뛰어난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앙케르가 살던 시대에는 여성이 학문을 익히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미술 공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에는 가정 형편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앙케르의 어머니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막내딸을 멀리 프랑스 파리로 유학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너는 내가 끝까지 지지해 줄 테니 가서 네가 원하는 바를 마음껏 펼쳐보아라." 이 격려에 힘입어 앙케르는 파리에서 당대의 거장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여 마침내 덴마크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덴마크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손꼽히는 여성 화가로 이름을 드높이게 된 것입니다.

앙케르는 어머니 덕분에 위대한 화가가 되었음을 늘 가슴에 새기고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앙케르의 어머니가 당시 북유럽의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자세, 평온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이 인상적입니다. 앙케르의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푸른 방의 어머니'라는 작품에는 항상 책을 읽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흔 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앙케르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세 가지가 뇌리에 남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책 읽는 어머니, 성실하신 어머니." 그녀는 가는 곳마다 이 세 단어로 어머니를 자랑하고 되뇌이곤 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런데 부모 세대인 우리 어르신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터인데, 그 이후에 우리 자녀들은 어머니를, 아버지를, 우리 부모를 어떤 단어와 이름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까? 좋은 이름, 좋은 단어, 하나님의 백성다운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부모 세대가 어떻게 살아서 자녀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믿음의 삶을 경주하며 달려가야 하는지를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 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1. 아담 계보의 의미

아담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는 이 본문은 하나님의 천지창조, 그중에서도 사람의 창조, 그리고 아담이 백삼십 세에 셋을 낳은 이야기까지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3절을 자세히 보면 빠진 것, 생략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인과 아벨 이야기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떠올리면 부모인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사랑하는 두 아들이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빚었습니다. 아벨은 형이 던진 돌에 맞아 세상을 떠나 먼저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계속되는 회개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홀로 에덴 동쪽 놋 땅으로 가서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하고 예배 공동체를 떠나 스스로 살겠다며 떠나버린 것입니다. 부모와도 단절하고 살았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으로 간 아벨을 향한 그리움과 마음의 고통이 부모에게 얼마나 절절했겠습니까? 동생을 죽인 가인에 대한 원망과 안쓰러움이 부모에게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 이후로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더 살아가야 했는데, 그 길고 긴 세월 동안 두 부모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가슴 아픈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아담과 하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자녀 교육이 어찌 부모 뜻대로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믿음생활 잘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며 기도하고, 결단하고 봉사하고 충성하며 자녀를 그렇게 길렀는데, 자녀는 머리가 굵어지고 성장하면서 부모의 뜻대로, 부모의 소원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갈 길로 살아갑니다. 가인처럼 에덴 동쪽 놋 땅에 가서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자녀도 있고, 아벨처럼 속절없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도 있습니다.

1-1. 실패 속의 새 시작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실패한 인생입니까? 우리도 아담과 하와처럼 자녀 농사를 망치고 자녀를 잘못 길러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해서 실패한 인생입니까? 많은 부모님들이 그것 때문에 염려하고 자신을 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권능과 영광이 사람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령의 거룩하심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완벽한 걸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선악과 명령을 어깁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 더 이상 있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작품이 실패한 것입니까?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아담과 하와는 결단합니다. 나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자녀 교육을 잘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동생을 죽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과 식물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동식물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로봇처럼 하나님께 무조건 예배하도록, 무조건 무릎 꿇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가능성까지 인간에게 주셨는데, 그 이유는 강요된 예배, 복종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억누르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귀한 예배이고 가장 인격적인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여백을 두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위대한 모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사건, 그리고 가인과 아벨 사건 이후에 낙심하여 세상의 모든 운행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고,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셨습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어가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런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을 본받아서 가인과 아벨의 참혹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여기 나오는 세 단어가 중요합니다. 낳고, 살고, 죽었더라. 이 말은 일상생활을 영위했다는 뜻입니다. 한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한 아들은 하나님 앞을 떠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낳고 살고 죽는 삶, 일상생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백성들도 우리 자녀의 삶의 여하와 상관없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낳고 살고 죽는 삶은 아담의 아들 셋에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6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담의 아들 셋도 낳고 살고 죽는 삶을 반복합니다. 창세기 5장 아담의 계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낳음과 살아감과 죽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