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제인 구달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은 침팬지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던 분입니다. 제인 구달 이전까지는 침팬지를 우리에 가두어 놓고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탄자니아의 열대 우림에 직접 들어가 10년 동안이나 텐트를 치고 침팬지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침팬지의 생태를 놀랍게 추적하고 관찰하여 글을 쓰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침팬지에 대한 업적뿐만 아니라 이분이 남긴 업적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특별한 것이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입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한 지역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도록 프로젝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환경 문제를 인식해도 직접 풀어가거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의 어른들과 성인들을 연결해 줍니다. 그러면 청소년과 성인들이 함께 이 문제를 풀어 가도록 오랫동안 노력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탄자니아에서 10명의 청소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100여 국에서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뿌리와 새싹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처음에 이분이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지금 청소년들에게 환경을 잘 유지하고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고, 이 환경을 우리가 잘 관리하지 못하면 나중에 큰 재앙이 올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한번 해보자, 이거라도 내가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지금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선한 일은 처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한번 해보기 시작하면 훗날 시간이 지나서 이 일이 어떻게 커질지, 열매를 맺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 아닙니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거기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기름부으시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요한이 광야 빈들에서 외쳤던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이 말씀을 외칠 때 그는 큰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외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큰 울림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회복시켰으며,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읽고 은혜받고 있습니다. 오늘 종교 개혁 기념주일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진리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로마 황제 디베료가 통치하던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중심은 로마였습니다. 또한 총독이 있었던 가이사랴 혹은 두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던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곳이 아닌 빈들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그저 빈들처럼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고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례 요한에게 임합니다.
말씀이 임했기 때문에 그는 일어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자들은 여전히 세속적 욕망을 쫓아서 로마로, 예루살렘으로, 혹은 가이사랴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례 요한이 있는 빈들로 달려옵니다.
빈들로 달려온 자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이 말씀이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회개면 회개고 세례면 세례인 것이지 회개의 세례가 무슨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물에 들어가서 받는 것이고, 회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털어 놓는 것인데 회개의 세례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요한이 세례받으러 온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 세례는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 주변에서 사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면 겉사람부터 속사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와서 세례받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란 말을 쏟아붓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세례식이 있고 입교 예식이 있었는데 그분들에게 목회자가 설교하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할 만큼 강력한 말씀을 전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한 걸까요? 물세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외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례받지 않습니까? 세례받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직분을 받습니다. 집사가 되고, 조금 더 지나면 권사도 되고,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교회 중직인 장로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례부터 시작해서 신앙의 외형을 만들어 가고 형성하게 됩니다. 봉사 생활도 하고 헌금 생활도 하고, 우리가 눈에 보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물세례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입니까? 과연 우리 신앙이라는 것이 물세례로 대표되는 신앙의 외형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껍데기가 잘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이분의 직분이 괜찮은 직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봉사의 직분과 섬김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서 있지 않으면 그분의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물세례를 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외친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서 세례받고 나서 신앙생활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그냥 물세례가 너희 인생을 바꿔 줄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 속에 있는 독사 같은 기질을 바라보라. 너희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바라보라.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