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리니

본문: 창세기 49:29-50:13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은 1820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살았던 영국의 인물입니다. 90년이 넘는 긴 생애를 살았던 그를 우리는 흔히 '백의의 천사', '간호학의 창시자'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만 나이팅게일을 파악한다면,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는 거리가 멉니다. 나이팅게일은 탁월한 통계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1800년대 초반 영국 빅토리아(Victoria) 시대, 여성의 사회 참여가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던 때에 그는 귀족 출신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라틴어와 헬라어를 배웠고, 작문과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혔습니다.

스물아홉이 되던 1849년, 나이팅게일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방문하여 현대적 간호 체계의 부재를 절감하고, 본국에 돌아와 직접 간호학을 배우기로 결단합니다. 귀족 부모의 반대를 뚫고 독일로 건너가 현대 간호학을 수학한 후, 1853년 런던 여성 병원의 간호부장이 됩니다. 마침 그해 크림전쟁(Crimean War)이 발발하자, 수녀들과 함께 야전 병원에 자원하여 투입됩니다. 열악한 위생 체계와 엉망인 행정 속에서 46%에 달하던 사망률을, 위생과 행정 체계의 개혁을 통해 2%까지 낮추는 혁혁한 성과를 거둡니다. 귀국 후 그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정리하여 이른바 '나이팅게일 장미 도표'를 만들어 정치인과 병원을 설득했고, 1858년 여성 최초로 영국 왕립통계학회 정회원이 됩니다. 간호 전문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서적을 출간하며, 간호학이라는 분야를 독보적인 전문 직업의 위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1907년에는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까지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나이팅게일상을 제정하여 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가지 면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나이팅게일은 위대한 간호사인 동시에 행정가였고, 사회사업가였으며, 통계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사회 변혁의 운동가였습니다. 한 사람을 한 가지 면으로만 판단하면 반드시 오류가 생깁니다. 다면적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창세기 50장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야곱입니다. 우리는 야곱을 어떤 인물로 알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야곱을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라 말합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야곱을 영적 야망과 갈망이 탁월했던 인물이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축복을 위해 장자권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을 사랑의 사람이라 말합니다. 14년 동안 한 여인을 위해 종살이 할 만큼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를 기도의 용사라 부릅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건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를 편애의 아이콘이라 말합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유독 사랑하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틀린 평가는 없습니다. 모두 야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하나의 평가만으로 야곱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은 그만큼 입체적이고 다양한 인물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습니까? 혹시 한 가지 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 하나로 부모를 평가하고, 지금껏 가슴에 새겨 놓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보다 한 세대, 두 세대 위의 어른들은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를 살았습니다.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만약 입장을 바꿔서 우리가 부모 세대를 살았더라면, 우리 자녀를 그만큼 길러 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만큼 버텨 내고 견뎌 낼 수 있었겠습니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무뚝뚝하게, 치열하게 살아서 자녀에게 살갑지 못했던 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해서 때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도, 모두 그 시대가 남긴 상처입니다. 어떻게 한 가지 모습만으로 우리 부모를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을 볼 때는 다양한 면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지점을 알려 줍니다. 야곱의 마지막 장면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야곱의 모습이 자녀들 앞에 드러납니다. 그 모습은 자녀들에게 크나큰 위로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혈기의 사람에서 순종의 사람으로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창 49:29)

야곱은 자녀들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돌아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사프'는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누가 소집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147년의 인생을 살아온 야곱을 이제 부르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 호흡을 거두어 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소집에 응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녀들 앞에서 고백합니다.

이것이 야곱의 유언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야곱은 자녀들을 불러놓고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때로는 축복을, 때로는 권면과 위로를, 때로는 책망을 쏟아 냈습니다. 이제 마지막 유언을 남기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자녀들에게 대단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알고 있는 아버지 야곱은 전성기 때 혈기 넘치던 인물이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꽂히면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관철시킬 때까지, 내 손에 넣을 때까지 끝까지 버텨 내는 인물이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셔도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뿌리 박고 서 있던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야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철저하게 순종하겠다는 종말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종말 신앙이란 대단한 경지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 나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이 고백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령으로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기가 그토록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에서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군왕도 심판을 피해 가지 못합니다. 모두가 심판받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종말 신앙이 생깁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나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게 됩니다. 야곱이 이 마지막에 종말 신앙을 가진 것을 보면, 성령께서 그를 이끌고 계셨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을 본 것입니다. 지난날을 기억하는 자녀들에게 이 모습은 대단히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 깊은 은혜가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지막도 이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생을 살다 보면 자기 고집대로, 자기 의지대로 삽니다. 그 고집과 의지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말년이 되어 갈수록,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질수록, 자기 혈기를 끊고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엎드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줍니다. 달라진 부모의 모습, 달라진 사람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귀감과 은혜가 됩니다.

인생의 말년이 이렇게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욕심대로 발을 뻗치고 고집을 부리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화해하고, 약해진 모습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영광이 되며, 자녀들에게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애의 아버지에서 위로의 아버지로

야곱의 신앙 고백이자 유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창 49: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