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대로

본문: 창세기 49:28

고대 로마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로마 황제의 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이 광대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다 하더라도 저 먼 끝에 있는 속주까지 황제의 권력이 미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황제들이 운영한 제도가 있습니다. 이른바 답서(答書, Rescriptum) 제도입니다. 지방의 권력자들이나 부호들이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면, 황제가 그 아래에 친필로 자신의 의견을 적어 답변을 보내주는 것이 답서 제도입니다.

그런데 강력한 주권을 추구하는 황제일수록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살폈습니다. 그 사람이 지방의 실세라면 입맛에 맞는 답을 해주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여겨지면 대충 답을 했습니다. 이것이 로마 황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황제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략 1년에 약 천 통의 답신을 써야 했다고 하니, 황제도 고단한 직업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중앙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황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1년에 천 통의 답신을 쓰려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이 사람이 지방의 실세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정보력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재 권력도 혼자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재에 부역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독재도 가능합니다. 독재자조차 제대로 통치하려면 폭이 넓어야 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도 자신의 그릇이 커야 하고 분량이 넓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보석 같은 존재

오늘 본문에는 '분량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지, 이 '분량대로'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부족한 것을 채우며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에게 축복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열두 아들을 침상 앞에 불러놓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그런데 야곱이 축복한 이 아들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 부류는 축복이지만 사실상 책망, 혹은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받은 아들들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가 그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격려와 미래적 비전을 받은 아들들입니다. 주로 여종의 아들들이 그러했습니다. 존재감 없이 살았던 그들에게 야곱은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힘내라 격려하며, 움츠리지 말고 날개를 펴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독려합니다. 셋째 부류는 복다운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유다와 요셉이 바로 그 두 사람입니다.

이렇게 각양 다르게 마지막 말씀을 하신 이후에, 창세기 기자는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 49:28)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깨닫습니다. 첫째,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는 사랑받은 아들도 있고, 큰 업적을 남긴 아들도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유다는 형제들을 화해하게 한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유다의 희생으로 인해 요셉과 형제들이 하나가 되고, 온 가족이 이집트(애굽)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받지 못하고 책망받은 아들도 있고, 큰 잘못을 저지른 아들도 있으며, 존재감이 전혀 없었던 아들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어떤 아들이든 이 열두 아들 모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업적을 세우고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되고, 보잘것없고 업적이 없으며 아버지에게 미움받은 사람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열두를 똑같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 28:21-22)

대제사장의 의복을 규정하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옷 중에 에봇이라는 조끼 같은 옷이 있고, 에봇 위에 판결 흉패를 붙이는데, 그 흉패 위에 열두 개의 보석을 두라고 하셨습니다. 세 개씩 네 줄, 모두 열두 개입니다. 그 보석에 이스라엘 각 지파의 이름을 새깁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스불론, 잇사갈, 갓, 단 등 열두 이름을 모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제사장의 가슴속에 이스라엘 각 지파 모두가 보석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이 옷을 다 입고 들어가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모든 자손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1년간 지은 죄를 회개하고 쏟아낼 때, 대제사장이 그들을 가슴에 품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그때 들어갔으나, 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모든 자손이 보석처럼 새겨져 있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보석처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아들을 차별할 수 있습니다. 귀한 아들도 있고 업적을 세운 아들도 있으며, 존재감이 없고 미미한 자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보석 같은 존재로 여기십니다. 보잘것없어도, 존재감이 없어도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여종이 낳은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비할 수 없이 존귀한 보석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1-2)

대제사장이 이 옷을 입고 있는데, 그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고, 가슴을 타고 흐릅니다. 가슴에는 열두 보석이 박힌 흉패가 있습니다. 이 기름이 열두 보석 하나하나를 타고 흐릅니다. 그 기름은 열두 보석 중 어느 하나도 건너뛰지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소외시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