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49:19-21
한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띄어쓰기입니다. 엄격한 띄어쓰기의 원칙이 잘 지켜진 글은 가독성이 뛰어나고, 읽으면서 이해가 수월합니다. '양산시 어머니 합창단'이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양산 시어머니 합창단'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띄어쓰기 하나가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띄어쓰기는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비롯한 고대 언어에는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문맹이 대부분이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필사자들에게는 고역이었습니다.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그것을 다시 베껴 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고달팠습니다. 9세기에 이르러 부지런한 학자들에 의해 라틴어에 띄어쓰기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글을 읽는 것이 한층 편안해졌습니다. 띄어쓰기의 핵심은 여백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빈칸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의미 전달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여백의 중요성은 글을 읽는 데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여백은 중요합니다. 마트의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면 그것은 품절, 곧 인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좀 더 서둘러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반면 가득 차 있는 진열대는 팔리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게감 있는 사람, 영향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만 가득 차 있다면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는 여백도 필요합니다. 가끔 농담하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여백이 있어야 공동체가 무리 없이 돌아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여백 없이 심각한 일만 계속된다면, 매일 중요하고 어려운 일만 한다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가끔 넘어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하면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백이 있어야 우리도 살만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갓, 아셀, 납달리. 이들의 공통점은 여종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빈칸 같은 존재, 여백의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평생 이 집에 살면서 갓, 아셀, 납달리를 다정한 목소리로 한 번이라도 불러본 적이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그 집에는 요셉이 있었고, 베냐민이 있었고, 장남 르우벤과 무게감 있는 유다가 있었습니다. 갓, 아셀, 납달리 같은 존재들은 아버지가 이름이나 알까 싶을 정도로 빈칸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이들을 빈칸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여백 같은 존재였지만, 하나님은 아버지 야곱의 입을 통해 이들을 마음껏 축복하십니다.
그 첫 번째는 갓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창 49:19)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도리어'입니다. '도리어'를 중심으로 앞과 뒤가 완벽하게 나뉩니다. '도리어' 앞의 삶은 군대의 추격을 받는 삶입니다. 숨이 차고 힘겹습니다. 군대가 쫓아오니 두렵고, 숨을 쉴 공간이 없으며, 삶이 버겁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후의 삶은 달라집니다. 도리어 추격하는 자가 됩니다. 숨 쉴 공간이 생기고, 힘이 생기며, 오히려 내가 군대가 되어 다른 군대를 추격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갓의 인생은 역전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그의 인생을 축복하셨습니다. 너의 인생은 역전의 인생이 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갓은 레아의 몸종 실바가 낳은 첫째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태어났을 때 레아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갓이라는 이름의 뜻은 '복'입니다. '복되도다'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복은커녕, 실제 그의 인생은 복되지 않았습니다. 여종의 자식이었고, 그 여종의 주인이었던 레아도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면 복은커녕 저주스러웠습니다. 그의 인생은 자기 집에서도 숨 쉴 공간이 없었고, 여지가 없었으며, 매 순간 옥죄어 왔습니다.
야곱뿐 아니라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두고 모세가 12지파를 축복할 때에도 갓 지파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신 33:20)
'광대하다'는 히브리어 '라하브(רָחַב)', 곧 지경을 넓게 하다는 뜻입니다. 추격당하던 자가 추격하는 자가 되어 영향력과 능력을 갖추고, 반전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리라고 야곱도 축복하고 모세도 축복하셨습니다.
역전을 이루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초반에 점수를 잃었다 하더라도 역전을 꿈꾸려면 그 경기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감독도 선수도 끝까지 해 보아야 합니다. 경기를 그냥 포기해 버리면 상대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끝까지 경기를 붙들고 늘어져야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갓에게 주신 축복도 같은 맥락입니다. 도리어 너는 군대를 추격하는 자가 될 것이다. 너의 인생이 힘겨울지라도, 저주스러울지라도, 삶의 자리를 놓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붙들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붙들고 갈 뿐 아니라, 끝까지 견고하게 버텨내야 합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힘들고 치사해도 그 자리에서 버텨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역전을 이루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빌라도(Pilatus)와 헤롯(Herodes) 같은 자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환호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없으니 마음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침 뱉음을 당하시고, 온갖 수치와 모욕과 구욕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옷을 벗김 당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모욕당하신다고 그냥 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거기서 떠나 버리셨다면 역전의 능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그곳에서 부활하셔서 역전의 드라마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버텨야 합니다. 붙들고 견뎌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정신으로, 어떤 자세로 버티고 이겨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버텨내신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기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보다 더 독한 사람, 나보다 더 강한 자를 만나면 우리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