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막 4:26-34)

학교 다닐 때 국어 공부를 하면 여러 장르의 문학을 배웁니다. 시도 배우고, 수필도 배우고, 소설도 배웁니다. 소설을 공부하다 보면 문제에 꼭 나오는 것이 "이 소설의 시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황순원의 「소나기」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은 어떻게 다를까요? 관찰자 시점은 관찰만 하는 것입니다. 행동을 관찰하고 말을 관찰해서 행동과 말과 여러 주변 정황을 미루어 지금 등장인물은 이런 심리 상태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은 이 인물의 속마음까지 작가가 다 분석합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계획하는 것, 원하는 것, 품고 있는 것, 악한 것, 선한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시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사고와 계획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계획도 알고 계시고 악한 마음을 품는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장차 일어날 일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여러 가지 상황들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시점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점으로 성경을 읽다 보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형편없어 보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왜 저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죄를 지어야만 했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실 텐데" 하며, 그것을 못 참고 이스마엘을 낳고야 마는 아브라함의 미련한 모습을 우리는 원망합니다. 다윗도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왕이 되고 나면 하나님 앞에 더 굳게 서서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할 텐데, 왕이 되자마자 평안하게 살자마자 밧세바와의 범죄에 빠져드는 다윗을 보며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우리가 성경상의 그 인물이라면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믿음을 지키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준다고는 했는데 시점을 못 박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일지 내일일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죄를 짓고, 다윗도 역시 연약한 인간성으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우리 인생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1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10년 뒤에는 어떤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질지, 그것을 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함께 읽고 묵상하고 은혜 받으면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인생인지 함께 길을 찾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

우리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이고, 두 번째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먼저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씨의 놀라운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6절과 27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농부가 있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이 씨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하나도 모르고 씨를 열심히 뿌렸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씨를 뿌리는 농부는 내가 뿌린 씨가 매일매일 얼마만큼 성장하고 얼마만큼 자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는 그냥 밤낮 자고 깰 뿐입니다.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뿌린 씨가 시간이 지나면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씨를 뿌렸는데 싹이 나고 자라서 이삭이 되고 나중에는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사람이 한 일과 하나님의 일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씨를 뿌리는 것이 나의 일이고, 하나님은 그 씨를 성장하게 하고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내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자라지? 얼마나 성장하고 얼마나 자랐을까?" 씨를 뿌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뿌리를 뽑아봅니다. 뿌리가 얼마나 내렸는지, 그리고 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또 뿌리를 뽑아봅니다. 그리고 또 심어둡니다. 그러면 이 식물이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들들 볶이다가 그만 스트레스로 죽고 말 것입니다.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씨를 뿌려두었으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겠거니, 하나님이 성장시키시겠거니" 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이고,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축구선수들이 감독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이 축구선수는 훌륭한 선수라 할 수 없습니다. 한 경기에 두 골, 세 골을 몰아쳐 넣어도 감독이 전술을 펼치는데 그 전술에 녹아들지 않으면 그 선수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너는 이 포지션에 가서 뛰어라" 하면 거기 가서 열심히 뛰어야 됩니다. 감독은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팀을 운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감독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1-1. 열매에 대한 마음

씨를 뿌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열매에 대한 마음입니다. 내가 씨를 뿌려서 이 씨의 열매를 내가 얻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내가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29절을 보십시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농부가 열심히 씨를 뿌리고 추수 때가 되어서 낫을 가지고 추수를 합니다. 그런데 이 씨가 내가 뿌린 씨의 열매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됩니다. 남이 뿌린 씨앗을 내가 거둘 수도 있고, 내가 뿌린 씨앗을 남이 거둘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분들, 저 먼 외국에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살다가 가신 분들, 그들이 씨 뿌리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분들이 열매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것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백여 년 전에 이 땅에 와서 열심히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먹고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열심히 그 하루, 그 하루 하나님의 말씀에 지금 이 순간에 순종을 하면서 열심히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에 소망과 열망은 있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고 나면 이 땅이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이 땅이 충만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매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새가족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었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 친구가 나를 위해서 20년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나더러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나는 '예수 너나 믿어라'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넌 왜 나를 위해서 기도하니?' 그러니 그 친구가 복음을 전해서 내가 복음을 듣고 가까운 교회, 이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