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에 임한 말씀 (눅 3:1-2)

18세기 프랑스 왕실에는 여러 궁정 화가들이 활동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진 화가는 프랑수아 부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은 루이 15세의 전속 초상화가였던 궁정화가로서, 루이 15세의 가족들과 일가친척, 그리고 당시 프랑스 왕실에 드나들던 귀족들의 삶을 그림으로 그렸던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분이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대표작이 퐁파두르 부인에 대한 초상화였습니다.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이라는 그림인데, 이 그림을 보면 이 여인이 어떤 모습처럼 보입니까? 아름답고 자태가 곱고 굉장히 우아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情婦)였습니다.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혼란스럽게 했던 여인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실 부셰는 미술이라고 하는 것,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과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현실의 아픔, 사람들의 일상과 상황을 외면했던 대표적인 궁정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 정반대편에 서 있었던 화가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 프랑수아 밀레 같은 사람입니다. 이 분이 그린 대표적인 그림이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작품입니다. 1857년도 작품인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투박한 농부의 손이 거침없이 느껴지고, 참으로 고단한 현실에 허리를 굽혀 가며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농촌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전원적인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피곤하고 고단한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입니다.

사실은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우리의 현실 가운데 이런 모습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인생은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궁정의 화려한 삶을 쫓아가는 것처럼, 불나방처럼 먹고살기 위해서, 부귀영화를 위해서, 돈이 있고 명예와 권력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반대편, 낮고 낮은 곳에, 빈들 그 들판에 어딘가에 있을 연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보통 우리가 이렇게 질문하면 "하나님은 화려한 궁전에 계시지 않고 빈들에 계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궁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터부시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들판에서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광야를 전전할 때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왕궁에, 왕좌에 앉아 있을 때도 하나님은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왕궁이라고 함께하지 않고 들판이라고 무조건 함께하는 그런 이분법적인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진실한가 그렇지 않은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모실 만한 자격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실 만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궁전에 있든지 들판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항상 그분과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정반대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빈들에 있는 요한과 함께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요한과 함께하실 수 있었는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지, 우리는 세상의 중심을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권력의 체계와 시대적 정황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 누가복음 3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좌표가, 시대적 정황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있을 때"(눅 3:1)

2-1. 디베료 황제의 통치

이때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을 디베료 황제라고 했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라고 했습니다. 디베료 황제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로마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풀네임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입니다. 이 분의 재위 기간은 서기 14년부터 서기 37년까지입니다. 총 23년을 재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분이 다스린 지 열다섯 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략 서기 28년 혹은 29년 정도 되는 어간, 바로 그때의 일입니다.

사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이 사람의 선대왕을 알아야 됩니다. 이 분의 선왕은 그의 양아버지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입니다. 로마의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었던 최초의 황제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아닙니까?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굉장히 전략적이고 공격적이었습니다. 이 분은 국정 운영을 식민지 개척에 거의 전 생애를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이 사람은 식민지 운영을 제대로 했고 국토를 넓히는 데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많이 걷어야 됩니다. 식민지를 운영하려면 속주에도 세금을 많이 부과해야 되었고, 식민지에서 끌고 온 짐승들과 검투사들의 대결도 주선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는 오락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굉장히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세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분의 양아들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됩니다.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선왕과는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수적으로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식민지 개척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벌여 놓았던 사업들을 정리합니다. 세금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국가 재정이 아주 빠르게 안정을 찾았습니다. 백성들은 좋아했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어가지 않으니까요. 식민지 속주들에게도 과중한 세금을 더 이상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요구했던 것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속주가 조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속주에 총독을 임명했는데, 총독에게는 한 가지만 요구합니다. 과도한 세금도 필요 없다, 많은 특산물도 필요 없다, 오직 한 가지 독단적으로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항상 황제와 상의하고 일을 하고 전쟁을 벌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2-2. 본디오 빌라도

이때 티베리우스가 임명한 사람이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빌라도가 왜 예수의 재판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가 명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