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본문: 창세기 47:27-31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지도거북(Map Turtle)이라는 거북이가 있습니다. 등껍질에 지도 무늬가 새겨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도거북은 동면할 때 강이나 호수나 연못을 찾는데,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강을 선호합니다. 강은 흐르는 물이고, 연못이나 호수는 고여 있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따뜻한 봄볕에 강물이 먼저 데워지고, 이를 통해 봄이 온 것을 빠르게 감지하여 동면에서 일찍 깨어날 수 있습니다. 일찍 깨어나면 겨우내 방전된 체력을 보충할 수 있고, 짝짓기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됩니다. 생존과 번식에 훨씬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한편, 비단거북이나 늑대거북은 연못이나 호수를 선호합니다. 이들이 동면할 장소를 찾는 방식은 놀랍습니다.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은 적절한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냅니다. 동면하는 자리가 너무 깊으면 봄이 늦게 찾아와 다른 개체들보다 더디게 깨어나 경쟁에서 뒤처집니다. 반대로 너무 얕으면 포식자의 먹잇감이 됩니다. 그래서 아주 적절한 곳을 찾아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은 이처럼 자신이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 이른바 필살기를 한두 가지씩 갖추고 있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에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는 다람쥐가 주워 먹지 않으면, 겨울이 오기 전에 재빨리 뿌리를 내립니다. 땅이 굳어지기 전에 뿌리를 먼저 내려야, 봄이 왔을 때 빠르게 자라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의 동식물은 이렇게 생존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하신 첫 번째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육과 번성이 과연 동식물의 그것과 같은 의미일까요?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고, 자손을 번식시키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전부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내린 인생의 열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육과 번성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의 가족 70여 명이 이제 애굽(이집트)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흉년이 5년 남았을 때 애굽으로 왔고, 그곳에서 정착했습니다. 7년의 흉년을 지내면서 요셉은 바로를 영화롭게 하고 백성들도 복되게 했습니다. 보통 흉년이 1~2년만 지속되어도 통치자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7년의 흉년이 지속되는 동안 바로는 온 땅의 돈과 가축과 토지를 자기 소유로 삼아 중앙 집권 체제를 공고히 했습니다. 백성들도 요셉에게 감사하여 그를 구세주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7년의 기근 동안 늙어서 죽은 사람은 있어도,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었지만, 세금은 오분의 일만 내면 되었고, 종자도 지급받았습니다. 흉년이 끝난 후에는 그 종자를 땅에 뿌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흉년의 시간이 끝납니다. 풍년도 끝나고 흉년도 끝난 뒤, 야곱의 자손들과 요셉의 형제들의 삶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을 아버지 야곱은 깊이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헤브론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던 중 브엘세바에서 멈추어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도 됩니까? 아버지 이삭도 이곳에서 복을 받았고, 저도 이곳에서 복을 누리고 있는데, 이곳을 떠나도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으로 내려가라.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고 가족을 이끌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 약속의 증거를 지금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흉년의 기간도 무사히 지났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아닌 애굽 땅에서도 그들은 생업을 얻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증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땅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그들은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130세에 애굽 땅에 온 야곱이 17년을 살다가 14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아들들도 하나둘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떠나고, 요셉은 110세까지 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가족이 모두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요셉을 등용해 주었던 바로도 세상을 떠나고, 요셉에게 호의적이었던 이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새 왕조는 이전 왕조의 흔적을 지우려 했고, 일개 노예 출신이었던 히브리인 덕분에 기근을 벗어났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민족은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 1:11)

고센 땅에 있던 아름다운 도시 라암셋, 그곳의 목초지는 빼앗겼습니다. 목축업자였던 그들은 양 떼와 소 떼를 모두 잃었습니다. 이제는 벽돌을 구워 피라미드를 짓고, 국고성 비돔을 세우며, 라암셋을 건축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후손 모두가 이집트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야곱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약속하셨고, 생업을 주셨으며, 바로를 통해 보호하셨고, 흉년의 기간도 무사히 지키셨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자손들은 노예가 되어 있고, 먹고살기 힘들고, 매를 맞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었는데, 하나님도 야곱의 죽음과 함께 이 땅을 떠나신 것입니까? 후손들을 남겨놓고 떠나셨습니까? 그들은 이런 의문을 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를 건져 주지 않으시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 2:23-24)

그들이 기도했습니다. 탄식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도자 모세를 보내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마침내 출애굽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여전히 계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좋은 일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고, 건강하고, 자녀들도 잘되어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닥칠 때,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칠 때, 태풍이 불어닥칠 때는 어떻습니까? 마음이 힘들고 무너지고 육체의 고통이 찾아올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하고도 확실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탄식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인생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여기고 떠나 버리면, 우리에게는 질문만 남게 됩니다. 그 질문을 정답으로 바꾸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고 탄식하면,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고통의 한가운데서 우리 인생을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기도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고 기도하여,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내 인생 가운데 여전히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