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가 마르크스가 얘기한 것처럼 자본 축적의 역할(dynamics)으로 인해 소수에게 집중할 것인지, 쿠즈네츠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장, 경쟁, 기술 진보에 따라 불평등이 줄어들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
- 자본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상하게 된다.
- 이런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맬서스, 영 그리고 프랑스 혁명
-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인구 증가, 농촌 인구의 대탈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탄생했고, 이때 분배 문제가 이미 핵심이었다.
- <인구론>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을 출판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가 보기에 가장 큰 위협은 인구 과잉이었다.
- 맬서스는 아서 영의 에세이에 영향을 받았는데, 영 보다 더 과격한 결론에 이르렀다.
- 맬서스는 영국에서 프랑스 혁명과 비슷한 격변 일어나지 않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든 복지를 중단해야 하며, 빈곤층의 출산을 엄격히 통제 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리카도: 희소성의 원리
- 리카도(David Ricardo)와 마르크스(Karl Marx)는 19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경제학자들로, 둘 다 소수의 사회집단 –리카도는 지주, 마르크스는 산업자본가들– 이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득의 점점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 <정치경제학과 조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을 펴낸 리카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토지 가격과 지대의 장기적인 변화였다.
- 맬서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통계라고 할 만한 자료는 거의 갖지 못했지만, 그 시대 자본주의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 리카도는 맬서스의 모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논리를 더 밀고 나갔다.
- 인구와 생산이 모두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하면 토지는 다른 상품들에 비해 점점 더 희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토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지주에게 내는 지대도 상승할 것이다.
- 이에 따라 지주들이 국민소득 가운데 갈수록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서 나머지 인구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사회적 균형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 리카도가 볼 때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잇는 유일한 해법은 토지 임대소득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었다.
- 그의 예언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는데, 지대는 장기간에 걸쳐 분명 높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국민소득 중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농경지의 가치는 다른 형태의 재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 그러나 토지 가격에 대한 그의 통찰은 흥미로운데, 그의 주장의 기초였던 ‘희소성의 원리’는 어떤 가격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21세기 세계적인 부의 분배를 이해하는데 희소성의 원리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 될 것이다.
- 원론적으로 수요 공급의 원리가 균형을 되찾게 해주지만, 그 과정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 부동산과 유전 소유자들은 나머지 인구에 비해 엄청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
마르크스: 무한 축적의 원리
- <자본> (Capital) 1권이 출간되었을 때 경제적, 사회적 현실은 리카도 때와는 심층적으로 변모한 상태였다. 이제 더는 토지 가격 보다 산업자본주의의 동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 당시 가장 놀라운 실상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들의 비참한 생활이었다.
-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도시 빈민가로 쇄도해 왔다. 노동 시간은 길었고 임금은 매우 낮았다.
- 도시의 빈곤은 어떤면에서는 구체제의 농촌 지역에서 보았던 빈곤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8세 이상 어린이만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거나, 10세 이상만 광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이 실제로 있었던 예
- 오늘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역사적 자료는 19세기 후반 또는 19세기 마지막 1/3에 해당하는 시기에 가서야 구매력 면에서 임금의 의미 있는 상승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 1850년대까지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우 낮은 –18세기와 그 이전 수준에 가깝거나 심지어 더 낮은– 수준에 정체되어 있었다.
-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관찰되는 이 오랜 임금 정체 국면은 바로 이 기간에 경제성장은 도리어 가속화 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 이 두 국가의 국민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19세기 전반에 크게 늘어났다. 19세기 마지막 수십 년간 임금이 어느 정도 성장률을 따라 잡으면서 자본가의 몫은 조금 줄어들게 된다.
- 그러나 1차 대전 이전에는 구조적 불평등이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1870-1914년 기간에는 기껏해야 불평등이 극히 높은 수준에서 굳어져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부가 더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끊임없이 활대되는 악순환을 볼 수 있다.
- 어찌되었든 1840년대 노동소득이 정체되는 가운데 자본은 융성했고 산업 이윤은 늘어났다. 이것이 최초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맥락이 되었다.
- 그들의 핵심적인 질문은 단순한 것이었다. 반세기 동안 산업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대중의 삶이 비참하다면 산업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기술 혁신과 인구 이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존 경제와 정치 체제의 파산은 명백해 보였다.
-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이후 20년 동안 자본주의와 그 붕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기 위해 방대한 저작을 집필했는데, 이 작업은 미완으로 남았다.
- 마르크스는 <자본>의 1권만 출간한 뒤 사망했고, 그의 사후에 엥겔스가 원고를 짜맞춰서 출간했다.
- 마르크스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논리적 모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
- 부르지아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자기조절적 시스템으로 보아서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보았다.
- 마르크스는 자본의 가격과 희소성의 원리에 관한 리카도 모형을 자본주의 동학에 대한 더 철저한 분석의 바탕으로 삼았다.
- 그 시대에 자본은 토지 관련 부동산이 아니라 주로 산업자본이었으며, 따라서 기본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자본의 양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