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45:9-28
지미 카터(Jimmy Carter) 미국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29일, 백 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조지아(Georgia) 주지사로 재직하다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재임 시절에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했고, 이슬람 극렬주의자들의 도발에 사전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재선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런데 퇴임 이후에 그의 인생은 새로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분쟁 지역 어디서든 그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4년 한반도 핵위기 때였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어 가던 그때, 그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함으로써 전쟁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또한 그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Habitat) 운동을 추진하며 소외된 이웃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그는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비결은 삶의 가장 본질적인 원칙을 지킨 데 있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내건 공약은 정직이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시 닉슨(Nixon) 대통령의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으로 미국 국민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거짓말하지 않고 국민들 앞에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현실 정치인이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만 말하면 인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진가는 퇴임 후에 위력을 발휘합니다. 퇴임 후의 모습이 빛나자 재임 시절의 면모까지 새롭게 조명됩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던 그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 미국의 국내외 전문가 150명을 초대하여 장장 열흘 동안 조언을 경청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었습니다. 비판과 쓴소리가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국내외 언론들은 이 열흘간의 여정을 '국내 정상회담'이라 부르며 큰 찬사를 보냈습니다. 결국 그가 하나님 앞에서, 역사 앞에서, 국민들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평생 지켰기에, 그는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많은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한 가지 본질적 가치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원칙 없이 오히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을 맵니다. 그러다 보면 중요한 것까지도 잃어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야곱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중요한 삶의 원칙, 본질적 가치를 고백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본질보다 비본질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고백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붙잡고 고백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함께 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다가 담보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했습니다.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이 한마디에 요셉이 무너져 내립니다. 열 명의 회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했습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이 요셉임을 고백하며 통곡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재해석합니다.
이제 그의 감정이 정리되고 형들과의 만남과 울음이 끝난 후, 요셉이 형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창 45:9-10)
아직 흉년 기간의 5년이 남아 있었습니다. 7년의 흉년 가운데 2년이 겨우 지나고 3년째에 접어든 시점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책임지겠으니 아버지와 가족들을 모시고 오십시오." 요셉의 총리 관저에서 벌어진 이 감격적인 장면, 요셉 가정의 아름다운 사연을 들은 바로가 요셉의 말에 힘을 실어줍니다.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창 45:18-20)
이집트(Egypt)의 최고 통치자인 바로가 요셉의 말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나의 수레를 가지고 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라.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라. 애굽 땅의 모든 좋은 곳이 너희의 것이다." 이 아름다운 해피 엔딩, 이 아름다운 하모니, 드라마 같은 실제 이야기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섭리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계획 가운데 두 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이요, 또 한 사람은 유다입니다. 요셉은 어려울 때, 힘겨울 때 잘 견뎌냈습니다. 17세 나이에 노예로 팔려 노예의 옷을 입었지만 노예로 살지 않았습니다. 죄수의 옷을 입었지만 죄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총리의 옷을 입었지만 총리처럼 어깨에 힘주고 살지 않았습니다. 옷이 바뀌었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총리가 되어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았습니다.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는 섭리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원수도 사라지고,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 가운데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 사람, 유다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고 다말과의 관계를 청산합니다. 그 이후에 유다는 담보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했습니다. 그 역시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찌 드라마라는 것이 두 명의 주인공만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무대 가운데는 주연배우도 있지만, 조연들도 있습니다. 주인공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행인도 있고, 조연들이 그 모든 자리를 채워야 하나님의 위대한 대서사시가 완성됩니다.
요셉이 혼자서 요셉이 된 것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조연으로 애굽 사람 세 명이 떠오릅니다.
첫째는 보디발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이 이집트에 처음 왔을 때 그의 주인이었습니다. 요셉의 성실함을 알아보고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고발합니다. 요셉의 옷이 증거로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판단하기에 요셉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분별력을 잃고 요셉의 목을 치지 않았습니다. 기다려 주었고, 참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 안에 있는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요셉을 두고, 옥중 재반 사무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심지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을 때 그 두 사람까지 요셉에게 부탁했습니다. 만약 보디발이 그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칼을 휘둘렀다면, 요셉은 요셉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그가 감옥에서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내가 나가면 당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2년이 지나서야 바로가 꿈을 꾸고 난 후에 생각해 냅니다. 그리고 바로와 요셉을 연결시켜 줍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이집트 최고 통치자인 바로와 히브리 노예 죄수 요셉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닙니까? 두 사람이 만날 일도, 한자리에서 말을 섞을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결 고리가 바로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연결시켜 준 조연입니다.
셋째는 바로입니다. 바로는 개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추천했습니다. "히브리 노예 중에 꿈 해석을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러들여 해석을 듣는 것까지는 할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해석과 대책을 듣고, 그 사람을 14년 동안 이집트의 모든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특임 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개방적이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하고,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인물이어야 가능합니다. 바로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이 요셉 된 것은 자기 혼자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돕는 조연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집트 사람들까지 그를 도와서 오늘의 자리에 서고, 이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