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을 떠나서 (창4:13-17)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슈티프츠켈러 장크트 페터'라는 긴 이름을 가진 식당입니다. 이 식당은 민물 게요리와 비프스테이크로 유명하고, 성탄 시즌이 되면 아름다운 성탄 장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803년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방문했다고 전해집니다. 첫 번째 기록이 803년이니 아마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 식당은 개업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803년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1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식당은 면면히 이어져 왔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 가면 교토에 찹쌀떡 가게가 있는데, '이치와'라고 불리는 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1022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주인이 스물다섯 번이나 바뀌어 25대 주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딱 천 년 된 가게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천 년 이상 된 식당이나 가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1904년에 서울 종로에서 문을 연 '이문설렁탕'이라는 음식점입니다. 이 가게는 아주 유명해서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 박사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생님도 자주 이용했던 곳입니다.

가게가 백 년을 넘어서, 천 년을 넘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맛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맛이 변하면 사람들이 발걸음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맛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변하지 않아서 이런 가게가 지금까지 살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맛으로만 유지되기는 어렵습니다. 주인에게 뿌리 깊은 운영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 가게를, 이 식당을 운영할지 뿌리 깊은 철학이 있어야 흔들리는 세파에, 변화무쌍한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이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때로는 유연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열린 마음도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운영하는 식당이나 가게가 이렇게 한 곳에 오래도록 뿌리박고 백 년 혹은 천 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진실되게 우리의 믿음을 간직하고 유지하고 있습니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자신이 처한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 앞을 떠나기도 하고, 다시 오기도 하며, 이런 일이 수없이 많이 반복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올바르지 않고, 함께 믿음 생활하는 믿음의 백성들에게도 덕을 세우는 모습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의 마지막 비참한 종말이 어떠한지 이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해야 할 이유를 함께 깨닫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가인의 네 가지 항변

가인은 살인 충동을 느낄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동생을 살인한 이후에도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두 번이나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회개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셨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입니다. 땅이 더 이상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는 이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가인은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요? 13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가인은 하나님께 받은 심판을 자신의 죄벌로 수용하기가 너무 무겁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적반하장 아닙니까? 그는 살인자입니다. 동생을 죽인 사람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찾아와서 회개를 요구하셨는데, 그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심판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그 죄벌을 자기가 지기엔 너무 무겁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가인은 조목조목 하나님의 죄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1-1. 즉각적인 심판

1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이 지면에서 쫓아내셨기 때문에 나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단어는 '오늘'이라는 말입니다. 가인은 이 '오늘'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즉각적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즉각적으로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서운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가인의 항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전에 그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시지 않았습니까? 기다리셨지 않습니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회개 요구는 자기 편에서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오늘 바로 심판하시는 것에 대해서 서운함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행동을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만약 그 기회를 붙잡지 않고 놓쳐 버리면, 하나님 인내의 임계점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은 오늘 당장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 봐야 무엇하겠습니까? 그때 가서 하나님을 원망해 봐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죄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한 죄를 범했더라도 하나님께서 회개를 요구하시면 그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입니다.

1-2. 하나님의 얼굴

두 번째 가인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이유입니다. 14절입니다.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그는 두 번째로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가인은 하나님과 행복한 한때를 보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과 함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이 죄짓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죄 짓고 나서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심판을 받고 난 이후에 그의 마음의 불안이 감지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의 낯을 뵐 수 없게 되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떠나게 되었구나. 그는 그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가지고 있는 이 불안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게 되었다는 이 불안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하실 때 단 두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효력을 발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두 가지만 말씀하셨지, 내가 앞으로 내 얼굴을 네게 보여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죄 짓고 나니까 지레짐작으로 자기 스스로, 이제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끝나 버렸구나 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렇게 멀어지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버렸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말한 적도 없는데 그들은 스스로 숨어 버렸습니다.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그래서 죄가 이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내가 너의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이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끝장났구나 하고 생각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가장 행복한 상태가 어떤 상태냐 하면, 다윗이 그의 시편에서 고백했습니다. 시편 24편 5절과 6절입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특히 다윗의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얼굴이 반대 개념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부귀와 권능과 영광과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모든 선물과 부귀와 영화와 힘과 능력을 나에게 그대로 주십시오. 제가 구하고 또 구하오니 하나님 손에 있는 것 제게 다 주십시오. 하나님 손에 감춰진 그 선물을 제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은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성장하고 뿌리가 깊이 내리고 나면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 존재 자체로 내가 만족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해서 내 마음이 편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찬양함으로써 내가 행복하고 기쁜 것,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 인간의 실존은 아무리 많은 복과 영화와 권세를 가져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 그제서야 우리의 영혼은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